보학자료

헌강왕자설은 명백한 오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2-09 00:13 조회323회 댓글1건

본문

성봉님의 자료를 모셔왔습니다.


      헌강왕자설의 허구성

  이 설은 1592년 임진난 以前에 草澗 權文海(1534-1591)가 編著한 "大東韻府群玉"과
  1628년경의 文元公 沙溪선생의 族譜(序文) 및
  1665년경에 松窓 趙從耘(1607-1683)이 編著한 "氏族源流"에는
   없었던 說인데

  1664년경의 필사본 족첩  "平章洞世乘"에 시조공을 憲康王 第3子로 "封 光山府院君"이라고
  그릇되게 기록하였으며 또

  2세조 휘 軾부터 충숙공 휘 深까지 連이어 12대가 平章事였다고 그릇되게 기록하였으니 즉
 
 "憲康王第三子也出作庶人卜居于光山北佛臺山下及新羅王歸順於王太祖
  嘉之因以光山爲食邑封于光山府院君"
  "헌강왕3자로 (왕실에서 나와)凡民이되어 광산북쪽의 불대산 아래에 살곳을
  정했는데 이때 신라왕(경순왕)이 귀순하니 (고려)王태조가 기뻐서 광산을
  식읍으로 주고 광산부원군을 봉하였다" 하였으며 또

  興光(헌강왕 제3자 封광산부원군)- 軾(位之평장사)- 吉(평장사)- 順(位之평장사)
  - 策(位之평장사)- 貞俊(位之평장사)- 良鑑(문하시중 평장사)- 義元(位之평장사)
  - 朱永(상장군 평장사)- 光世(대장군 평장사)- 鏡亮(대장군 평장사)
  - 周鼎(판삼사사 대장군 평장사)- 深(도첨의정승) 이라 하였습니다.
 
族牒에 이 설을 기록한 사람은 사서를 접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 족첩에 기록한 "광산현제영시서"와 "충숙공 김심묘지명"을 도외시하고
사실에 없는 기록자 개인의 생각을 기록했으니 <삼국사기> 권11 진성왕 9년 10월조와
東史會綱 및 최치원의 納旌節表에 의하면 헌강왕에게는 庶子 嶢(후에 孝恭王)밖에 없었다고
했으며

崔致遠문집 제2권 납정절표에 "헌강왕이 887년 7월 5일에 갑자기 세상을 버렸는데
아들 嶢는 낳은지 돐도 안되었다"고  하였으니

헌강왕의 유일자인 요(후에 효공왕)는 886년 7월 5일 이후 생임을 알 수 있으며

황대전고공이 서술한 "광산현 제영시서"에서 시조공 휘 흥광의 손자인
3세조 휘 길 때에 신라왕 김부(경순왕)가 왕태조에 귀순(來臣) 했으며
휘 길께서 왕태조를 도와 큰공을 세워 그 상으로 삼중대광을 제수했으며
(개국)공신으로 되었다고 했고

고려사에 의하면 王室宗姓이 아닌 異姓에게는 封君制가 고려말 충렬왕31년(1305)에
처음 시행되었는데 사서에 어두운 기록자는 고려태조가 시조공에게 "광산부원군"을 封했다고
기록하여 이 기록에 의해 "光山府院君之壇"이라는 단비를 세우기도 했으나
훗날 그릇됨을 알고 埋安했습니다.

지금도 이 그릇된 기록에 依함을 모르고 12代(世) 평장사를 운위 하고 있으며

1747년의 丁卯大譜의 시조공 脚註에
'舊譜諸本云 惑云憲康王第3子而 東史會綱及 崔致遠納旌節表云 憲康有一子嶢' 라   하였고

1782년의 壬寅大譜와 1876년의 丙子大譜에도 '新羅王子를 惑은 憲康王 第3子라 한다'고 하였으므로

이 그릇된 기록을 근거로 하여 대제학을 지낸 文獻公(휘 永壽 1829-1889)도 金琦鉉의 묘표를 撰하면서
"- - - 金公諱琦鉉字致獻系出新羅憲康王第三子 - - - " 이라고 기록하였기 때문에

이런 그릇된 기록들을 근거로 하여 "동국만성보"와 "증보문헌비고" 및 1931년에 간행된
"조선씨족통보"등에 시조공을 "헌강왕 제3자" 라고 기록했던 것입니다.  

*"평장동세승"은 문숙공후충숙공파의 휘 승사 자손록과 휘 승진의 자손록일부에 面註가
있었으며 화평부원군 휘 석견의 후손은  현손까지 4대가 누락되고 소략했으며
시중공 휘 流는 문숙공의 次子로 만 기록되어 있고 자손록은 없었고
낭장공파 자손록도 역시 없었으며 양간공 자손록은 판군기감사공 휘 英利의 자손중
다수가 있었고 사온직장공파는 문경공 휘 예몽 이상은 누락된체
휘 예몽은 景簡公 휘 元義의 5世孫인 忠簡公 휘 續命 의 孫子로 系世되어 있었습니다.

"평장동세승"은 초기의 보첩이므로 누락과 오류가 많았습니다.  


-성봉- 

댓글목록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작성일

12대 평장사라고 했던 최초기록은 1664년경에 필사된 평장동세승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흥광- 子 식:위지평장사 - 子 길: 평장사 - 子 순: 위지평장사 - 子 책: 위지평장사 - 子 정준:위지평장사 - 子 양감: 위지문하시중, 평장사 - 子 의원: 위지평장사 - 子 주영: 평장사 - 子 광세:평장사 - 子 경량: 평장사 - 子 주정: 평장사 -子 심: 도첨의정승 평장동세승에 있는 위 기록을 근거로 하여 12대 평장사라는 주장이 자리를 잡아갔으나 1737년에 유허비를 찬한 퇴어자 휘 진상께서는 8대평장사로 바로 잡았던 것입니다.
8대 평장사는  2세 휘 식- 3세 휘 길- 4세 휘 준- 5세 휘 책- 6세 휘 정준- 7세 휘 양감- 8세 휘 약온/ 휘 의원 선조님까지를 말합니다.         
휘 진상께서 기록한 8대평장사가 맞습니다

보학자료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