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사보연(御賜寶硯) 기적(記蹟)에 대(對)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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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孤巖/準一 작성일09-06-27 22:56 조회2,13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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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 병자년(崇禎 丙子年 1636년 仁祖 14년)에 14世 문숙공(文肅公 諱:周鼎)의 손자 화평부원군(化平府院君 諱:石堅)의 11대손 27世 호(號):당계(棠溪),휘(諱):화준(華俊)이 병자호란시(丙子胡亂時)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주서(注書=史官)로 재임시(在任時) 문학(文學)과 충절(忠節)이 투영(透映)된 보답품(報答品)으로 인조왕(仁祖王)은 궁중에 있는 벼루 한 점을 상사(賞賜)하였다.
옛 문헌에 의하면 중국에서 벼루 3점이 오게되어 그 1점은 선조왕(宣祖王)께서 송강정공 철(松江鄭公 澈)에게 상사(賞賜)하고, 또 1점은 인조왕(仁祖王)이 잠곡 김상공 육(潛谷 金相公 堉)에게 상사(賞賜)하고, 세번째 보연(寶硯)은 인조왕(仁祖王)의 애기문사(愛基文思)로 희귀품인데 당계김공 화준(棠溪金公 華俊)에게 상사(賞賜)하였다.
이 보연(寶硯)의 크기는 가로 19센티미터, 세로 29센티미터, 높이 2.5센티미터 이고 특이한 점은 윗면이 자주색 바탕으로 흰색 무늬에 포도넝쿨이 뚜렷이 새겨지고 꺾인 넝쿨 세마디에 열매가 설고 익은것이 달리고 넝쿨에 따라 잎의색이 다르고 원숭이는 물을 마시며 메뚜기와 개구리의 형상과 색갈이 다른것을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신기하다.
당계김공 화준(棠溪金公 華俊)은 후손 중에서 학문(學文)이 가장 높은 자가 보연(寶硯)을 전수(傳守)하게 유명(遺命)하였다. 이는 후예(後裔)들의 학행(學行)을 장려해 주는 깊은 뜻이 내포된 것이다.
전수(傳守)한 기록을 보면 큰아들 청헌공 휘:주만(聽軒公 諱:胄萬), 손자 동호공 휘:한(東湖公 諱:瀚), 증손 통덕랑공 휘:여웅(通德郞公 諱:汝雄), 현손 장호공 휘:봉수(長湖公 諱:鳳壽). 현손 득소재공 휘:응수(得所齋公 諱:應壽),5대손 요요재공 휘:석신(樂樂齋公 諱:錫臣) 等 학문(學文)이 승(承)한 자로 전수(傳守)하게 되었다. 상사품 보연(賞賜品 寶硯) 장재(藏在 = 傳守) 203년(1839년)후에 석신.회원(錫臣,會源)의 부자(父子)가 중심이 되어 보연기적(寶硯記蹟)을 편찬하기 시작하니 육개성상(六個星霜) 긴 세월에 종인학자(宗人學者)30명, 타성학자(他姓學者) 23명, 관직자(官職者) 27명, 종인(宗人) 중 현직관헌(現職官憲) 3명 등 총 83명 학자(學者)들의 한시문(漢詩文)이 전성기(全盛期)로 절정에 이르렀을때 시작(詩作) 들이라 세인(世人)들의많은 애독감사(愛讀感思)의 표적이 되었다.
이 시(詩) 들을 보면 인간(人間)의 성정(性情)에서 우러나온 높고 뛰어나고 맑고, 빼어나서 긴 것은 준영(雋永) 하고, 짧은것은 고매(高邁) 하며 시정(詩情)이 천상예주(天上蘂珠 : 향초와진주)의 유품인듯 싶다.
이러한 보고(寶稿)의 한시문학(漢詩文學)이 지금의 한글 세대 에게는 해독불능(解讀不能)으로 지중옥(地中玉) 이기에 그래서 국역(國譯)이 절실히 요망되어 당계김공 휘:화준(棠溪金公 諱:華俊)의 11대손 춘수(春洙) 의 공력으로 1998년에 국역간행(國譯刊行)하게 되어 누구나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조상님들의 위업(偉業)에 감사하며 후손들로 하여금 그 맥(脈)을 이어 받고 현대문학 연구(現代文學 硏究)하는데 양식이 되리라 믿어진다. 이 보연(寶硯)은 당계공(棠溪公) 시제일(時祭日)인 매년 음 9월9일에 후손들이 볼수있고
축문(祝文) 쓸때 활용하는 종중의 보물(寶物)이며 2005년 현재 상사(賞賜)한지 369년 전수(傳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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