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 족보

본문

2.세계각국의 보학

back.gif

 

한국(韓國)의 족보(族譜)가 세계에서 가장 발달되었다고 하는 이도 있지마는 족보(族譜)에 대한 연구는 그렇게 활발하지 못하다. 이런 뜻에서 한국에는 족보(族譜)는 있어도 족보학(族譜學)은 없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족보학(族譜學)이 체계적(體系的)으로 발달되지 않았지마는 한국과 같이 족보(族譜)에 관한 지식(知識)이 일반화(一般化)된 나라도 또한 없을 것이다. 가계(家系)를 지금보다 더 중(重)히 여기던 옛날에는 교우(交友)하는 타인(他人)의 가계(家系)까지도 개략적으로 알고 있어야만 하였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한국인(韓國人)의 성명(姓名) 삼자(三字) 중에는 세 가지 개념(槪念)이 들어있다. 첫째 자(字)는 가문(家門)을 표시(表示)하는 성(姓)이며, 둘째자(字)나 셋째자(字) 중 어느 한 자(字)는 가문(家門)의 계대(系代)를 표시(表示)하는 항렬자(行列字)이니 결국은 한 자(字)가 자기를 표시하는 것이 된다. 간혹 외 자(字) 이름이 있지마는 이런 경우 계대(系代)도 표시(表示)하고 이름도 되는 두 가지 뜻을 가진다. 이와 같이 성명(姓名) 자체가 좋은 체계(體系)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성명(姓名) 삼자(三字)만을 보아도 그 사람의 족보상(族譜上)의 위치를 대략은 짐작할 수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관계로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족보(族譜)의 개념(槪念)은 알고 있다. 그러나 족보(族譜) 이야기를 하면 흔히들 봉건적(封建的)인 관념(觀念)과 혼돈하기가 일쑤이며 노인층(老人層)이나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 현실(現實)이다. 선진외국(先進外國)처럼 아직도 족보학회(族譜學會)나 족보출판사(族譜出版社)가 없지마는 각문중별(各門中別)로는 약 20년에서 30년 간격을 두고 관례적(慣例的)으로 족보(族譜)를 간행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름이 기록되기도 한다.

 

조선조(朝鮮朝) 오백년(五百年)의 정치(政治), 사회(社會), 문화(文化) 등을 연구하려면 지배층(支配層)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가계(家系)를 연구하지 않고는 알기가 힘들다. 특히 정치권력(政治權力)의 이동(移動)관계를 정확히 판단하려면 족보(族譜)에 대한 지식(知識)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족보학(族譜學)은 한국학(韓國學) 개발(開發)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내외학계(內外學界)에서도 한국(韓國)의 족보학(族譜學)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금 외국(外國)에 있어서의 한국학(韓國學)은 일본日本이 가장 활발하며 다음이 미국美國이요, 그 다음이 소련(蘇聯), 중국(中國), 불란서(佛蘭西), 영국(英國), 서독(西獨, 정말(丁抹), 호주(濠洲), 화란(和蘭), 노르웨이, 체코 등의 순서인 것으로 필자(筆者)는 알고 있다. 구미(歐美) 제국(諸國)에서는 미국美國)과 소련(蘇聯)이 가장 활발한 셈이다.

 

특히 미국(美國)에서 한국학(韓國學)이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대학(大學)은 하버드대학(大學)이다. 이 대학(大學)에서는 오래 전에 한국족보학(韓國族譜學) 연구(硏究)에 착수하였다. 따라서 이 대학(大學)의 연경연구소(燕京硏究所)에는 우리나라의 족보(族譜)책이 광범위하게 많이 소장(所藏)되어 있다. 이것을 토대로 이조사(李朝史)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으며, 각씨족(各氏族)의 정치참여성(政治參與性) 등도 연구하고 있는 줄 안다.

 

이와 같이 한국의 족보(族譜)는 외국에서 더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형편이다. 얼마 전에 신문(新聞)에 씨족별(氏族別) 이조(李朝)의 문과급제자(文科及第者)가 발표되었는가 하면, 또 「인맥(人脈)」이며 「성씨(姓氏)」등의 연재기사(連載記事)가 크게 나오기도 했다. 그것은 외국(外國)에서 연구되고 있는 한국 족보학(族譜學)의 바람이 국내(國內)로 불어온 여파(餘波)로 짐작된다.

 

말하자면 족보(族譜)를 거론(擧論)하면 양반(兩班) 자랑을 한다고만 생각하고 있다가 뜻밖에도 외국(外國) 학계(學界)에서 새로운 각도(角度)에서 먼저 연구를 하게 되니 비로소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선거(選擧) 때만 되면 범김운동(凡金運動)도 있고 범이운동(凡李運動)도 있다. 이것은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학적(科學的)으로 연구 대상이 된 적은 없다. 족보학(族譜學) 운운하는 것이 전근대적(前近代的)이 아니라, 이러한 현실을 은피(隱避)하려는 그 태도가 전근대적(前近代的)인 것이다.

족보(族譜)에 관해서 잘못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만이 족보(族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무식(無識)이 된다. 필자(筆者)가 알기로는 문화민족(文化民族)치고 족보(族譜)가 없는 나라는 없다. 중국(中國)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본(日本)도 상층사회(上層社會)만은 있으며 영국(英國), 불란서(佛蘭西), 서독(西獨) 등 서구국가(西歐國家)는 물론이고, 특히 미국(美國)에서는 많은 씨족(氏族)이 족보(族譜)를 가지고 있다.

1967년에는 미국 유타주(州)에서 미국족보학회(美國族譜學會) 창립(創立) 75주년(七十五週年)을 맞아 「기록보존(記錄保存)」에 관한 주제(主題) 아래 내외(內外) 학계(學界)의 많은 인사(人士)를 초청하여 국제회의(國際會議)를 열었다. 필자(筆者)도 이 회의(會議)에 한국대표(韓國代表)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였다. 이 회의는 규모도 컸거니와 비용도 거액(巨額)으로 추산되었다.

 

미국족보학회(美國族譜學會)는 몰몬교(敎)에서 지원(支援)하는 재정(財政)으로 본부(本部)를 유타주(州) 솔트레이크시(市)에 두고 있다. 이 학회(學會)에서는 거대(巨大)하고도 흥미로운 족보전문도서관(族譜專門圖書館)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마이크로 열독기(閱讀機)만 해도 三百臺가 있고 하루에도 數百名의 열람자가 모이고 있다. 그만큼 족보(族譜)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본다. 또 솔트레이크시(市)의 뒤에는 큰 돌산이 있는데 거기에 큰 굴을 파놓고 귀중한 자료(資料)들을 보존해 놓고 있다. 만약에 큰 변란(變亂)이 일어난다 해도 이 석굴(石窟) 깊숙이 있는 자료만은 후세(後世)에 남기자는 생각에서 이와 같은 보존시설(保存施設)까지 갖추고 있다.

 

또 이 도서관(圖書館)은 미국(美國)의 족보(族譜)뿐만 아니라 세계(世界) 각국(各國)의 족보자료(族譜資料)를 모조리 복사해서 보존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족보(族譜)도 대다수(大多數) 복사해 갈 것을 계획하고 있다. 이 계획을 보면 우선 우리 국립중앙도서관(國立中央圖書館)에 있는 많은 족보(族譜)를 마이크로필름에 담아 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족보기록(族譜記錄)을 소홀히 하다가는 어느 장래에는 미국 유타주(州)까지 가서 우리 족보(族譜)를 보고 연구하게 될지 모른다.

 

미국(美國)에는 유타주(州)에만 족보(族譜)관계 기관(機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스턴을 비롯한 여러 곳에 있음을 본다. 그 사람들은 가계(家系)를 패밀리 트리(family tree = pedigree)라고 한다. 즉 「가족(家族)의 나무」라는 뜻이다. 한 가족(家族)을 나무로 생각하여 나무뿌리는 근원(根源)으로서 조상(祖上)을 나타내고, 여러 갈래의 가지는 분파(分派) 내지는 지손(支孫)을 말하며 또 꽃이나 잎사귀는 많은 자손(子孫)을 가리키고 있다. 참으로 우리나라의 「화수(花樹)」와 잘 비유(比喩)된 말인 줄 안다. 또 족보(族譜)의 학술적(學術的) 용어(用語)는 지니알러지(genealogy)라 한다. 이와 같이 가계(家系) 혹은 족보(族譜)에 관한 말들이 서구(西歐)쪽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족보(族譜)에 관심이 크다는 뜻이 된다.

 

1970년 솔트레이크시(市)에 갔을 때 그들의 족보(族譜)를 보았다. 우리나라의 팔고조도(八高祖圖)와 같은 방식으로 작성(作成)되어 있었다. 직계(直系)와 연계(姻系)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기입(記入)하고 있다. 남편(男便)은 남편대로 팔고조(八高祖圖)도 같은 것을 만들고 부인(婦人)은 부인대로 그와 같이 작성(作成)한다. 자손(子孫)들이 보면 부계(父系)와 모계(母系)의 내력을 그대로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또 유타주(州)의 각(各) 대학(大學)은 이 계보(系譜)의 작성법(作成法)을 학과(學科)에 편성해 놓고 교과(敎科)로 배우고 있다. 참으로 놀랄 일이다. 또 족보도서관(族譜圖書館)에서 보니 고종사촌(姑從四寸)끼리 와서 서로의 조상을 찾아내려고 열심히 옛 기록(記錄)을 들추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종친회보(宗親會報)와 같은 패밀리 뷸리틴(family bulletin=家族公報)을 발간해서 일가(一家) 혹은 친지(親知)에게 보내는 것도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친공보(宗親公報)를 내는 문중(門中)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더구나 가족공보(家族公報)를 내는 집안은 없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 교회주보(敎會週報)를 통해서도 조상들의 거주지(居住地), 직업(職業), 결혼일자(結婚日字), 생년월일(生年月日) 등을 알아내기도 한다.

 

일본(日本)에서는 근래(近來)에 와서야 호적(戶籍)을 더듬어 명치유신(明治維新)전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조상을 찾아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이 외국(外國)에서는 잃어버린 조상을 찾아내는 운동(運動)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韓國)에서는 알고 있던 조상도 잃어버릴 형편에 있다.

인간(人間)이 살자면 생활(生活)이 있고 생활(生活)이 있으면 기록(記錄)이 있게 마련이다. 그 기록(記錄)은 영구(永久)히 보존(保存)되어야 한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우리나라에도 족보학회(族譜學會)의 창립(創立)이 있어야 하며 족보문헌(族譜文獻)의 출판사(出版社)도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