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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라왕자 유허비명 |
惟我 鼻祖新羅王子際國運否遯居于此既明且哲 聖朝藵美潜光毓德爰乃後嗣八代平章烜爀東史洞占美號實由於此歷年八百尙存遺址髣髴想慕曷有其已謀宗樹石顚末玆記淸芬遐躅聳動瞻視佛臺西負瑞石東峙山靈地祗亦應護持以圖不泯百千萬禩
崇禎再己未 月 日 서기 1739년 後孫 通德郞 會豊 銘
[譯文] 우리의 시조할아버지는 신라의 왕자로서 국운(國運)이 기울어질 때 이곳에 둔거하시니 명철(明哲)하신 그 지감(知鑑)을 성조(聖朝)에서 찬미하였다. 빛을 감추고 덕(德)을 쌓아 후손(後孫)에게 끼치어 팔세(八世)의 평장(平章)이 동사(東史)에 빛난다. 아름다운 그 지명(地名)도 실로 이러한 까닭이다. 팔백년을 지냈어도 유허(遺墟)는 남아있어 은은히 보이는 듯 하고, 그 상모(想慕)하는 마음 끝이 없다.
종인(宗人)들과 의논하여 돌을 세워 기록하니 맑은 향기와 유구한 자취가 보이는 듯 감돌고, 불대산(佛臺山)을 배경(背景)으로 서석산(瑞石山) 바라보니 영험(靈驗)한 산 정기(精氣)와 지운(地運)이 응기(應起)하여 보호(保護)한다. 백천만년의 역사속에 길이 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