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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광산김씨의 요람 |
平章洞)의 地勢와 形局
“남대천의 연어”
평장동으로 가는 동안 내 머릿속엔 이 화두가 떠나질 않는다. 남대천의 물줄기를 거스르는 연어의 행렬은 “근원에의 회귀이다.” 인간사(人間事)에 적용하면 어떤 모습일까? 젊은 시절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거쳐 부(富)와 명예(名譽)를 쌓은 머리 희끗희끗한 이들의 귀향(歸鄕)과 비슷한 모습이리라. 단지 연어가 다음 세대(世代)로 가기 위한 죽음과 삶의 순환고리라면 인간사의 경우는 말 그대로 근원(根源)에의 안착(安着)이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돌아봄”인 것이다. 도심에서 40여분의 거리, 광주시내에서도 이리 맑은 동네가 있나 싶게 조용한 곳이다. 상아색 계단을 오르다보면 널찍한 취사당(聚斯堂)이 넉넉하게 앉아있다. 이리로 모여라는 뜻으로 이름하여 취사당(聚斯堂)이라 하였다. 종중(宗中)식구 누구라도 올라치면 서너 집 식구들 둘러앉아 조금은 시끄럽게 놀아도 좋을 듯한 “열린 공간”이다. (후에 가필)
분명 인걸은 지령이라 했다
명당의 정기는 문벌의 흥성이 반증하는 것이리라. (가필)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始祖 金興光)의 사당(祠堂)은 전남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위치하고 있다. 노령산맥 태조봉(太祖峰)을 주산(主山)으로 하여 서남으로 수백리 뻗어 내려온 산맥의 정기가 불대산(佛臺山) 소조봉(小祖峰)에 이르러 대단히 넓고 힘차게 펼쳐지면서 기(旗)와 창(槍)과 칼을 세워 놓은 듯한 형상은 특수하면서도 아름답다.
서른여덟 개의 장군봉으로 나누어 웅대하게 둘려 쌓여 수백리를 흘러온 황룡강 물과 서로 만나 안고 돌아 나가니 산수 정기가 빼어나고 또 한곳으로 기(氣)가 뭉쳐 있으니 문무(文武)의 훌륭한 인물이 대를 이어 나올 명당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이곳을 호남의 명당, 만고대지(萬古大地)라 부르고 있으며, 비기(秘記)에 전하는 몽불산(夢佛山, 현 담양군 수북면 삼인산)의 명혈인 정혈(正穴)로 믿고 있다.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종사(宗師) (김양감), 조선예학(朝鮮禮學)의 태두(泰頭) (김장생), 부자명현(父子名賢) (김장생, 김집), 형제 대제학 (김만기,김만중), 3대 대제학(三代大提學) (김만기,김진규,김양택), 의병장 (김덕령) 등 수많은 인물을 배출하고, 백만이 넘는 후손들이 사회각계각층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음은, 이를 사실로 증명하고 있다. (후에 가필)
시조공의 사당(祠堂)에서 바라다 보이는 서석산(瑞石山,현 무등산)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고 웅장하며 길고 큰 강물이 서로 만나 함께 흘러가니 산맥과 물줄기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형상이라 양택(陽宅), 음택(陰宅)으로 구분할 필요 없이 자손만대로 문무와 부귀가 끊이지 않을 명당임에 틀림없다.
이 형국을 가리켜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다하여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이라 하는데 소조산인 불대산을 등지고 좌우로 산맥이 갈라져 흡사 병풍을 둘러쳐놓은 것과 같다.
좌측을 청룡(靑龍)이라 칭하니 단소의 자리가 앞으로 뻗어 나아가면서 좌우로 산맥이 다시 갈라져 우측인 백호의 줄기가 여덟겹이요, 좌측의 청룡 줄기는 일곱 겹으로 그 형태를 전체로 보면 단소내당(壇所內堂)이 태극형을 이루고 좌우 청룡, 백호가 양쪽 날개와 같기 때문에 불대산 봉우리를 봉황의 머리에 비유하여 전체의 전경을 봉황이 알을 품고있는 현상으로 표현하여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이라 했다.
내룡(來龍)의 세력을 살펴보면 경태방(庚兌方)에서 들어온 산맥이 건해방(乾亥方)으로 바뀌어지면서 커다란 구릉을 이루고 여기서 해좌사향(亥坐巳向)을 향하며 을진방(乙辰方)에서 만났다가 정미방(丁未方)에서 다시 나누어 흘러 나아가고 내당(內堂)의 형태가 둥글어서 좌청룡 우백호가 겹겹으로 둘러쌓여 호위하였다.
앞뒤와 좌우로 여러 갈래의 산맥과 봉우리가 모두 명산으로 금태산(金太山), 서석산(瑞石山), 양림산(陽林山), 삼각산(三角山), 건지산(巾之山), 환등산(奐登山), 삼선산(三仙山) 등이고 삼길육수봉(三吉六秀峰)은 높고 아름다우면서도 우뚝 솟아 있으며 특히 건해방(乾亥方)이 금성 철벽처럼 견고한 산맥과 봉우리가 싸고 있어 고관대작이 끊이지 않으며 손간태방(巽艮兌方)이 아름답고 빼어나서 부귀공명은 하늘이 정해 주었고 산봉우리마다 높고 고상하여 자자손손 흥성하며, 경태신방(庚兌辛方)의 문필봉(文筆峰)이 겹겹이 쌓여 서로 비춰주고 있어 문장과 거유(巨儒)가 많이 나올 뿐만 아니라 대과급제자가 대대로 줄을 이을 것이다.
안산(案山)인 서석산은 호남의 제일의 명산으로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섰으며 사방을 제압할 만한 기상을 띠었고 겸하여 문수손신(文秀巽辛)하여 또한 석학과 거유, 그리고 고관대작이 끊이지 않을 명당중의 명당의 형태를 갖추었다.
경(經)에 이르기를
“건산건향수류건(乾山乾向水流乾)하면 삼원불패지대지(三元不敗之大地)라 하니 시조(始祖)의 단소는 광산김씨 대대손손(代代孫孫) 불패지대지(不敗之大地)”라 할 것이다.
이제 막 신록이 배어나는 조상의 유허를 소요하다보니 어느덧 맑은 바람이 옷깃에 서늘하다. 조선(祖先)과의 만남도 좋지만 이젠 돌아갈 시간인가 보다. 속(俗)은 속(俗)대로 귀한 거니까. 늦은 봄 뿌리를 돌아보고 가는 발걸음에 진자줏빛 두견화 향기가 깔린다. (후에 가필)
※ 편집자 주
① 이 글은 연대와 작자미상이다. 글쓴이가 풍수학에 뛰어났고 우리 선대 조상인 것만은 사실이라고 추리된다.
② 문장 중 처음 시작한 “남대천의 연어”로부터 “삼신산의 명혈인 정혈로 믿고 있다” 까지 25줄의 글과 “동방이학의 종사 김양감 선생님 이를 사실로 증명하고 있다”의 5줄과 끝마무리의 글 “이제 막 신록이 베어나는 조상의 유허를 소요 ~ ”부터 “진자주 빛 두견화 향기가 깔린다”까지 4줄의 글은 후세에 덧붙인 글이다.
③ 선대의 글 후대에 각색을 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글은 역사적 주요문헌이 아니고 풍수학적으로 입신의 경지에 오른 신안(神眼)의 글이라고 사료되어 가필을 삭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