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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종사당 건사통문 |
원문한문 생략
위의 글은 광산김씨(光山金氏)로 평장사(平章事)의 후손(後孫)된자 그 수가 억뿐 아니요 매미 날개처럼 연하고 범의 가죽처럼 벌리고 바둑처럼 펴져서 자못 온 나라에 널리 펴지니 자손이 번성하고 복록이 멀어서 다른 성씨로도 드무니 그 이유를 연구하면 이 어찌 소자출이 없이 그러하겠는가.
생각건대 우리 시조 왕자공(王子公)깨서 기미를 보고 피하여 광주(光州)북쪽 불대산(佛臺山) 밑에 한 구역을 얻어 자손에게 줄 터를 마련하여 힘써 그 덕을 심으니 멀수록 빛이 잠겨서 평장사(平章事)의 지위에 으뜸하여 십 여대(十餘代)에 이르니 양씨(楊氏)의 사세(四世)오공(五公)도 일찍이 견주지 못할지니
그 유업이 높고 문학(文學)이 빛나서 소상하게 책에 있고 반반(斑斑)하여 가히 상고할 만하니 깊은 인과 두터운 덕을 많이 쌓았고 넓게 발육하여 이에 자손에게 미치고 무궁하게 드리워 살던 땅에 유적(遺蹟)이 완연하고 평장한 마을을 지금에 길가는 사람들도 손으로 가리키는데 하물며 우리 후손들이야 이 언덕에 올라 그 근원을 찾으면 어찌 공경하고 사모하여 감동하는 마음이 없으랴.
아! 먼 할아버지를 추모하고 근본에 보답하는 것은 인도(人道)에 당연한 일이요. 어진이 높이고 덕을 숭상함은 선비가 공경하는 바이며 숭봉(崇奉)하는 예와 제사를 올림을 보고 듣는바에 있는 듯한 생각을 말하지 못할지라. 선군자(先君子)들도 응당 의논이 여기에 미쳤을 것인데 세월만 보내고 미루다가 아직까지 거행하지 못하고 고요한 천 백년(千百年)에 다시 정성을 드릴 곳이 없으니 이 어찌 선비들의 흠된 일이요, 우리 종중에 수치가 아니겠는가.
또 지금은 엄(嚴)가 성을 가진 사람이 여기에서 사니 천년(千年)된 옛터가 하루아침에 남의 소유가 되니 우리 후손의 도리로써 금단(禁斷)하는 거조가 있어야할 것인데 저들과 다투자니 너무나 노노(呶呶)하고 오직 사당 세우는 일만이 공격하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해결될 것이요. 엄가(嚴苛)는 또 말하되 오늘 사당을 세운다면 내일이면 집을 헐겠다하니 어찌 우리 일가들이 격려(激勵)하고 분발(奮發)하여 급급(汲汲)하게 경영하여야 할 좋은 기회가 아니겠는가. 여러 백년(百年)에 미처 하지 못한 일이 장차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니 이로 인하여 분기(奮起)하여 능히 큰일을 이룬다면 엄(嚴)가의 집 짓는 일이 꼭 우리 종중에 다행함이 되지 않으랴.
지금 우리 일가들이 팔노(八路)에 흩어져서 혹 서울에 혹 시골에 살면서 서로 안면도 대하지 못하고 사는 곳조차 알지 못하는 이도 있으니 노천(老泉)에 이른바 한 사람의 몸으로 길가는 사람에 이른다는 말이 불행하게도 가까우니 이 영건(營建)하는 기회로 인하여 한 곳에 서로 만나서 다시 돈목(敦睦)하는 뜻을 편다면 우리 종중에 이 일이 진실로 가히 조종(祖宗)에 빛을 더하고 후손에게 넉넉함을 주었다고 하겠도다. 혹자(或者)는 자손으로 선조에 사당을 세우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하나 이는 크게 그렇지 아니함이 있도다.
옛적에 진씨(陣氏) 사령사(四令祠)와 요주(繞州)에 삼서묘(三徐廟)와 여간(餘干)에 남계와 선거(先居)에 동강(桐江)은 다 이 자손들이 선영을 위하여 세운 사당이요, 또 금세(今世)에도 안동(安東)의 삼태사(三太師)의 사당과 성주(星州)의 농서공(隴西公)의 사당이며 합천에 태진당(太眞堂)의 위에 같은 일이 하나뿐만 아니나 또 모든 자손이 선영의 묘소에 의하여 설립하였다.
종말(宗末)들이 옛 제도를 모방하고 지금 풍속을 따리 이 땅에 사당을 세우고 존모(尊慕)하는 정성을 붙이려고 여러 종장(宗丈)과 같이 경영하려 하오니 엎드려 원하건 데 여러 군자(君子)들은 명년봄 삼월 십오일(三月 十五日)에 일제히 창평(昌平)용흥사(龍興寺)에 모여 대사(大事)를 논의하고 재물을 모아 공사를 시작하게 되면 다행이겠습니다.
*註 楊氏四世五公:魏나라때 楊千萬이 百頃王으로 封을 받았고 대대로 王으로 封했는데 四世에 이르러 楊茂搜가 左賢王으로 封을 받았다
禁斷:못하게 막음
呶呶(노노):번잡하고 시끄러움
老泉:蘇老泉이니명은 洵이요 蘇東坡의 父이다
汲汲:쉬지 않고 부지런히 함
餘干南溪:여간은 현명이요 남계는 국명이니 五代時十國의 하나
仙居桐江:仙居는땅이름 桐江은 忠充의號
安東三太史廟:權幸安東金宣平仁同張吉
星州隴西公廟:李純由
陜川太眞堂:妥眞堂이니 세종조의정승.河演의夫妻와三子友明의 사당인데 冶爐面遯村에있다
崇禎再壬寅十二月十七日
發文 進士 金光洙
幼學 金洙鼎 金泗鼎 金 岐 金碩器
幼學 金 木寅 金道三 金德三 金德垕
生員 金八華
幼學 金鼎樞 金鼎新 金八章
金八最 金鼎禹 金八諧
金鼎呂 金鼎泰 金德洪
金兌章 金鼎麟 金八溥
金八護 金八柱 金鼎玉
金鼎鳳 金鼎龜 金德海
金德涵 金八垕 金德奎
金運泰 金以泰 金 琦
金日光 金東泰 金宗泰
金日中 金錫泰 金義瑞
金尙溥 金日粲 金商說
金周瑞 金日鍊 金商砥
金商運 金應瑞 金慶瑞
金台瑞 金世秋 金光淑
金光浚 金光涑 金光沃
金德麟 金光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