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 선세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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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평장사 묘정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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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光山金氏는 平章洞으로부터 始作되었고, 歷史는 千年이 넘으며, 後孫의 숫자는 百萬을 헤아린다. 長久한 歷史의 變遷속에서 榮辱을 거듭하면서 三韓甲族, 名門巨族, 禮文宗家로 成長發展하였다. 平章洞은 始祖 新羅王子公(諱 興光)이 國亂을 豫知하시고 王子의 地位를 버린 채 遯世寓居하시어 後孫들의 繁榮을 準備하신 光山金氏 發祥地이다.  우리 後孫들은 開基遺墟址 平章洞에서 始祖公을 奉享하고, 遺墟址를 保存管理하고, 功德과 遺訓을 받들고, 美風과 禮俗을 傳承하여 名門의 後裔로써 自矜心 鼓吹涵養과 宗族들의 歸一和合에 盡力하고 있다.

 

歷史를 詳考하면 始祖公 이래 名臣巨儒와 忠義烈士들이 줄을 이었고, 東方理學의 宗師, 朝鮮禮學의 泰斗 등이 우리 祖上으로써 儒學의 代統을 繼承하고 國民純化와 學文발전에 크게 貢獻하여 빛나는 名門의 傳統은 歷史속에 燦爛하다.

 

後孫된 者 祖上을 奉享함은 綱常의 法道이고, 誠敬의 禮로써 重히 함이 人倫의 道理이며 名門의 始祖公 享禮는 祠宇奉享이 禮에 合當하다. 우리 祖上님들은 1722年에 建祠發議를 하고, 1786年에 完工하여 이름을 宗祠堂이라 하고, 1796年에 文安公을 設享하였다. 發議後 竣工까지 64年이며, 竣工後 奉享까지 10年이다. 74年 걸려 이룩한 感激의 첫 奉享이었으나, 當年에 謀陷당하여 수많은 祖上님들이 獄苦를 치루었다.

 

그러나 이에 屈하지 않고 光州牧使에게 單子를 올리고, 斧鉞을 무릅쓰고 駕前上疏까지 올리면서 이듬해 1797年 始祖公을 奉安하였던 痛恨의 歷史가 平章誌에 句句節節하다. 우리 祖上님들이 그토록 精誠을 다하여 이룩했던 祠宇奉享이 當時의 法度와 世俗이 混沌하여 存續되지 못하고 毁撤이라는 슬픈 過去의 歷史속으로 묻혀버린 채 不可避하게 次善으로 選擇하였던 壇祭奉享이 1920年 設壇 이래 長長 82年이나 되었다.

 

이에 우리 大宗中은 祖上님들의 召命과 遺訓을 받들어 遺墟址에 옛 祠宇를 復元하기로 하였다. 痛恨과 悲願의 歲月 280年의 未完成을 마감하기 爲함이며, 人倫의 法度를 바로 하여 名門의 位相을 當當히 하여야 할 責務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代물림 받은 宗命 隨行을 위한 役事가 始作되자  수많은 宗親들의 激勵와 함께 聲援이 줄을 이어, 그 精誠 한데 모아 遺命을 成功的으로 完遂하고, 祠宇이름을 平章祠라 하였다. 이로써 우리 始祖 할아버지는 露天에서 눈․비․바람을 避하고 祠堂에 安住하시어 後孫들의 禮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祖上님들의 念願을 이룰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의 燦爛한 歷史를 內外에 알리고 禮文宗家임을 名實共히 하였다.

 

始作의 動因은 司醞直長公 後孫 榮鎬가 獻誠한 位土畓이 公共事業編入에 따른 巨額의 補償金受領으로 緣由하였고, 위 獻誠者의 發議와 宗中丈老들의 建議에 依하여 常任任員會, 理事會의 滿場一致 決議를 얻어 始祖公祠宇復元推進委員會를 構成하고 役割을 分擔하여 熱과 誠으로 所任들을 다하였다.

 

光山金氏 千年史를 通하여 百萬宗族의 念願인 始祖할아버지 祠宇를 完成하고, 位牌를 奉安하면서 不肖한 나에게 廟庭碑 記錄을 命함에 내 敢히 宗命을 拒否하지 못하여 祠宇復元의 顚末을 要略하여 記錄하고 삼가 글을 올린다.

 

우리 光山金氏 遺墟址에 百萬後孫의 精誠 한데 모아 할아버지 집 짓고 追遠報本의 禮 올리니 痛恨의 悲願도 오늘로 끝이 남이다. 始作과 完成의 늦음이 不充과 世俗에 緣由함이었으나, 이제 本末을 바로 하였음으로 祖上님 기뻐하시고 우리 또한 즐거움이다. 光山金氏 後孫된 者 할아버지 神殿 앞에 머리 숙이라. 그리고 感謝하라. 姓도 이름도 祖上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가지고 있는 것 모두도 祖上의 蔭德에 起因함이니 더욱 삼가고 精進하여 燦爛한 名門의 傳統을 永遠히 이어가라.

 

西紀  2002年  11月  5日 글 김황수  글씨 김영원

 

편집자 주

① 뉴밀레니엄을 시작하는 2000년 황수 도유사가 취임하여 시조공의 단소를 철단하고 사우 신축안을 상임위에서 의결하고 이사회에 부의하였으나 참석이사의 찬반의견이 가부동수로 나누어지자 이사회 의장 평호가 본안 유보결정을 선포하였다

② 2000년 황수 도유사가 취임하여 평장동 유허지 성역화사업 “마스터플랜”을 전남대학에 의뢰하여 수립하고 유허비와 비각을 전라남도에 문화재 신청을 하여 전남도로부터 “유허비”가 “기념물 제200호”로 지정을 받았다. 자료 정리와 추진 실무역을 전곡유사 선술이 담당했고 성사를 위해 중채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③ 2001년 황수 도유사가 시조공 사우 복원안을 이사회에 재차 상정하여 만장일치의 찬성을 받아 시조공 사우 복원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총괄에 영호, 의전에 영원, 재무에 윤중, 홍보에 만진 부유사를 그리고 건사에 이사회의장 평호를 실무 간사에 선술을 위촉하였다.

④ 2002년 11월 5일 시조공의 유허지에 옛 사우를 복원하고 성역 내에 처음으로 묘정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