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 선세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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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서원강당 중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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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한문생략

오직 우리 평장동(平章洞)에 종중(宗中)서원(書院)을 세우자는 의논이 오래되었는데 경종(景宗) 갑진(甲辰)년에 처음 강당을 세우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중지하니 우리 일가들의 슬픔이 어떠하였겠는가,

 

윗대 할아버지 사모하는 정성이 갈수록 더 답답하더니 당저(當宁)병오(丙午)년에 서울과 시골의 여러 일가들이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한결같이 하여 먼저 사당은 세우고 기유(己酉)년에 이어서 강당과 사당 정문을 세우다가 불행하게도 흉년을 만나 세월만 보낸 뒤 병진(丙辰)년 三月 말정(末丁)에야 처음 선조 문안공(文安公)을 향사하였는데 종중에서 서로 말하되 이미 사당을 시조께서 살던 곳에 세웠는데 시조는 향사하지 않고  다만 문안공(文安公)만 향사하는 것은 사리에 부당하다 하여 비로소 정사(丁巳)년 五月 중정(中丁)에 시조 위패를 문안공 위패 위에 모시고 빛나는 한 사당에서 조(祖)와 손(孫)을 같이 배향하고 많은 후손들이 일심으로 정성껏 받드니 아! 융성하도다.

 

옛적에 강당이 있었는데 거의 무너질 지경이라 제사를 마치고 여러 의논이 나에게 중수(重修)하라는 책임을 맡기니 굳이 사양하였으나 얻지 못하고 석 달 만에 공사를 마치니 기와와 재목은 하청(下淸) 남암(南菴)에서 올려왔고 돈과 고식은 종중(宗中)의 명전(名錢)으로 충당하였다.

 

아! 갈수록 더 힘쓰고 다가올수록 이 같이 한다면 이 집이 우주(宇宙)와 같이 늙으리니 어찌 묵고 폐할 염려가 있으랴. 정당(正堂) 삼칸은 창문이 넓고 동서(東西)방은 활짝 밝으니 봄, 가을에는 일가들을 모시고 의를 두텁게 하며 윤기를 밝히고 여름과 겨울에는 배우는 선비들을 모아 글을 강하고 예를 익히게 하며 우러러 사당을 보면 선영이 의지할 곳이 있고 원근(遠近)을 돌아보면 선비들이 돌아갈 곳을 얻었으니 추로(鄒魯)에 남은 풍속을 어찌 거듭 오늘의 봄이 아니랴. 만일 그렇지 않고 밥 먹고 술 마시며 허망하게 노는 곳임을 면치 못한다면 크게 이어 어긋나는 본뜻이 아니니 어찌 서로 더불어 힘쓰지 아니하랴

 

*註 當宁:당시의 임금을 말함이니 正祖이다

濟濟:많고 성함

下淸:지명

南菴:지명

鄒魯(추로):추나라는 孟子께서 살던 곳이요 魯나라는 孔子께서 살던 곳

肯構(긍구):이어서 짓는다는 뜻

 

後孫 性溵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