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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타 문화재 자료
(10) 도만호 김성우 장군 묘소(都萬戶金成雨將軍墓所) |
위치 :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 나원리 발산
17세 김성우(金成雨)(문숙공파/판도판서공파) (1327∼1392). 65歲, 고려 후기의 무신,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윤장(允臧)이다. 고려말에 약관(弱冠) 18세의 나이로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제수되었고 1350년(충정왕 3) 도만호 겸 전라충청양호초토사(都萬戶兼 全羅忠淸兩湖招討使)에 발탁되어 왜구(倭寇) 토벌의 왕명을 받고 출정(出征)하여 전주, 나주, 부령(扶寧)등 전라지역의 오랑캐를 무찌르고 1380년(우 왕 7)에는 진포구의 왜선 5백여척을 함몰시켰으며 임주(林州), 한주(韓州), 서주두둔의 왜구를 휩쓸었다.
또 다시 내포지역의 급보를 접하고 서해안의 도처에서 대첩(大捷)을 올렸다. 40여년에 걸쳐 왜구의 소굴인 이 지역을 소탕함에 있어 군둔전(軍屯田)으로 군량을 자족하고 군기제조(軍器製造)로 군의 장비(裝備) 를 자급하며 군마목축으로 군마를 자축(自畜)하고 생포한 왜구는 군로(軍奴)로 노역에 충당하였다.
개선장도(凱旋壯途)에 이태조 등극으로 고려국통(高麗國統)이 무너지고 장군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대의로 업드려 쓰러진 애마(愛馬)의 목을 자르고 장군 역시 자처(自處)하였음으로 장군의 사적을 알 수 없으나 가노(家奴)의 전래도 군드리 모랭이 조잠이란 마을이 있고 옥마봉 남서고개에 사혁의 재가 있다.
將軍은 동시대 활약한 최영(崔瑩) 將軍보다 12년 정도 후배 장군이고, 이성계 보다는 7년 앞선 장군이 었다. 김성우 장군은 서해안지역의 왜구 토벌을 위하여 전라우도 도만호 초토사(全羅右道都萬戶招討使) 로서 전라도지역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충청도 대천, 보령지역으로 왜구를 토벌하기 위하여 왔으며, 현재 지명등에 비추어 볼 때 충남 보령군 청라면의 성주산일대에 주둔지를 편성한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