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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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문화재 자료

(6) 취가정 (醉歌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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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0호 (북구) | 위치 : 광주 북구 환벽당길 42-2(충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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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가정은 김덕령의 혼을 위로하고 그를 기리고자 후손인 김만식과 집안사람들이 1890년에 김덕령이 태어나고 자란 이곳에 세운 것으로 정자의 이름은 권필의 꿈에 나타난 충장공의 취시가(醉時歌)에서 따온 것이다. 취가정은 큰 나무들이 서 있는 동그란 언덕에, 자미탄을 뒤로 하고 외따로 떨어져 자리잡았다. 부근의 정자들이 주로 자미탄을 내려다보는 데 비해, 널리 펼쳐진 논밭을 바라보고 있다.

이 정자는 막돌 허튼층에 기단을 둘러쌓고 자연석 덤벙주초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온돌방인 중제실(中齊室)의 기둥이 각주가 아니고 원주로 되어 다른 정자와는 다른 형태이다.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졌고 취가정은 1950년 6.25때 불타버린 것을 김만식 의 후손 김희준과 문족들이 1955년에 복건하였다.

 

충장공 김덕령은 무등산 아래 석저촌(북구 충효동)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에 무등산에서 무예를 닦았다. 지금도 무등산 곳곳에는 그와 관련된 전설이 많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되어 고경명, 곽재우 등과 함께 크게 활약했는데 모함을 받고 억울하게 옥사했다.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이 석주(石州) 권필(權韠, 1569~1612년)의 꿈 속에 나타나 서로 시를 화답하면서 충장공의 원혼을 달래었다는 전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