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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문화재 자료
(4) 부용정 (芙蓉亭) |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 | 위치 :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129
부용정(芙蓉亭)은 조선(朝鮮) 태종(太宗) 연간에 황해도도관찰사(黃海道都觀察使)를 역임한 바 있는 22세손(世孫) 부용공(芙蓉公) 문발(文發)이 건립(建立)한 정자(亭子)이다.
공(公)은 문정공(文正公) 태현(台鉉)의 7대손(代孫)으로 무주(武州)의 서일동(西一洞)에서 태어났으며, 문무지략(文武智略)이 뛰어났다.
무관(武官)으로서 돌산만호(突山萬戶)를 시작으로 순금사대호군(巡禁司大護軍), 전라도수군순무사(全羅道水軍巡撫使), 상호군(上護軍,) 경기(京畿)·충청(忠淸)·경상(慶尙)·전라도수군도절제사(全羅道水軍都節制使)를 지냈으며, 문관(文官)으로서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장령(掌令)을 거쳐 호조참의(戶曹參議)·순천부사(順天府使), 형조참판(刑曹參判), 황해도도관찰사(黃海道都觀察使)를 역임(歷任)하였다.
현재로서는 정자(亭子)가 축조(築造)된 정확한 연대(年代)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공(公)이 병환(病患)으로 충청도수군도절제사(忠淸道水軍都節制使)의 직(職)을 일시 사임(辭任)하고 전라도수군도절제사(全羅道水軍都節制使)에 다시 제수(除授) 된 1410년(太宗 11년)에서 1411년(太宗 12년)간을 전후하여 수축(修築)하였을 것으로 추정(推定)된다.
정자는 연당(蓮塘)을 갖춘 정원(亭園)으로 수축(修築)되었으며 주렴계(周濂溪)의 애련(愛蓮)한 뜻을 취하여 편액을 부용정(芙蓉亭)이라 명명(命名)하였다. 공(公)은 이곳에서 향민(鄕民)의 교화(敎化)를 위하여 향약(鄕約)을 설시(設始)하였다.
그 뒤 필문(蓽門) 이선제(李先齊)를 거쳐 양과동향약(良苽洞鄕約)까지 조선시대(朝鮮時代)와 현대(現代)에 이르는 600여 년간 이 지역에서 계속 시행되었으며, 이것이 우리나라 향약(鄕約)의 효시(嚆矢)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정자 근처에는 공(公)이 손수 심었다는 은행나무(光州市記念物 제10호)가 있으며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 제33호인 고싸움놀이가 바로 칠석동(漆石洞)에서 시행된 것도 향약(鄕約)의 설시(設施)와 무관치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공(公)의 뒤를 이어 부사(府使) 이시원(李始元), 대사성(大司成) 노자형(盧自亨)이 향약(鄕約)을 실시하 였고,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 박제형(朴齊珩), 김형(金逈), 김봉현(金鳳鉉) 제현(諸賢)의 제영시(題詠詩)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