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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시·도 지정 문화재 (유형문화재)
(14) 김계휘 신도비(金繼輝 神道碑)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위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거정리13-1
1566년(명종 22) 중시 문과 을과 제1인으로 뽑히니 통정에 승진하여 동부승지를 배수하였다. 중시에 올린 시표가 시정에서 걸출일 뿐만 아니라 당송명문집에도 당당히 우두머리가 될 만하니 곧 학사가 당상 관이 되는 예요 상감의 은총도 받았다.
그 후 대사성, 황해도 관찰사, 이조참의, 대사간이 되었으며 중국에 사은사로 다녀왔고 1573년(선조 7) 가선에 승진되어 경상도관찰사가 되고 그 뒤로 대사간을 네 번, 대사헌을 세 번 지냈고 평안, 전라관찰사, 공·형조참판, 상호군, 동지돈녕부사를 역임하고 예조참판 때에는 동지성균관사, 동지의금부사를 겸하였다.
경상감사 재직시 백성의 제소(提訴)를 공정히 처결하여 흐르는 물 같고 일의 작은 수나 이름이라도 한 번 듣고 본 것은 아무리 오래되어도 잊지 아니하니 이민(吏民)이 그 신명함을 탄복하였다.
또 급미(給米) 3백석을 연산으로 보내 고운산사에 있는 정회당을 대둔산으로 옮겨 서재를 짓고 학문을 권장했다. 종계변무(宗系辨誣: 왕조계통이 명나라 서책에 잘못 기록된 점을 바로 잡는 것) 교섭차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야 하는데 학식이 고명한 인재로 황제를 감동시켜야할 당시의 인물은 김계휘와 이이뿐이었다. 임금이 계휘로 주청사를 삼으니 고경명과 최립은 보좌관으로 수행하였다. 1600년(선조 34) 광국원 종공신에 녹훈되고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의금부사,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지춘추관, 성균 관사, 세자좌빈객으로 추증되었다. 묘(墓)는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고 신도비가 논산시 연산면 거정리에 있으니 지방유형문화재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見朝鮮王朝實錄, 國朝文科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