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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국가 지정 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
(2) 김덕령 장군 의복 (金德齡 將軍 衣服) |
중요민속문화재 제111호 | 위치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1023
위 사진은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유품인 의복(민족자료 제111 호지정)과 충장공의 관이 보관된 유물관과 장군의 훌륭한 공적 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2004년 2월 23일 충장사 경내 에 세운 충장공 신도비
1965년 광산김씨의 무덤들이 모여있는 광주 무등산 이치(梨峙)에서 김덕령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 토된 400년 전의 의복들이다.
김덕령(1567∼1596)은 임진왜란때 담양에서 이름을 떨친 의병장으로 비록 체구는 작지만 민첩하고 능 력이 탁월해 왜병장들은 그의 얼굴만 보고도 무서워 철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선조 28년(1595) 적장과 내 통한다는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체포되어 이듬해 옥사하였다. 영조때 그의 무고함이 밝혀져 병조판서 로 추증되었고 광주 의열사에 그의 위패를 모셨다. 출토된 그의 의복에는 조선시대 문무관이 외국에 사신 으로 파견되거나, 왕을 호위할 때, 또는 국난시에 입었던 철릭의 여름용과 겨울용 2점, 두루마기와 같은 모습이지만 옷깃이 직선으로 곧아 이름 붙여진 직령포가 춘추용과 겨울용 4점, 그리고 저고리 1점과 바지 1점 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철릭은 임진왜란 당시 그가 입었던 것으로 위급시에 양팔을 모두 뗄 수 있게 만들었다. 여름옷은 흰모시 로 만들었고 겨울용은 두터운 솜을 넣고 누빈 것으로 길이도 여름용보다 더 길게 하여 방한용으로 입었다.
직령포는 흰 무명을 곱게 누빈 춘추용과 솜을 두텁게 두고 누빈 겨울용이 있다. 특히 명주직령포는 삭 아서 솜만 남았으나 다른 옷들은 등솔기에서 소매 끝까지의 화장길이가 85㎝인데 비해 129㎝로 길다. 따 라서 이것은 생존시에 입었던 옷이 아니라 시신을 입히기 위해 특별히 만든 수의로 보인다.
저고리는 겉은 굵은 면이고 속은 마로 안에 솜을 둔 것이고, 바지는 현재 솜만 남았으나 바지 형체가 뚜 렷하게 남아있다. 이 옷들은 16세기말의 것들로 복식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