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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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기타 문화재 자료

(41) 효자 송계공 김용언 효행비(孝子 松溪公 金龍彦 孝行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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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전남 화순군 남면 절산리 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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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 김용언(金龍彦, 1702~1791)은 문숙공 김주정의 후예으로 출천지효(出天至孝)를 실행하였을 뿐 아니라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 많은 시문과 유집을 남겼다. 부모 사랑함이 지극하여 7,8세부터 진기한 물건이나 음식을 보면 품에 간직하여 돌아와 봉양하니 향리에서 효동으로 불리었고, 성장하여서는 혼정신성(昏定晨省)에 어긋남이 없고 공양을 진성하니 고을에서 더욱 흠탄하였다.

 

모상을 당함에 3년 동안 묘에 올라 곡하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으며, 아버지가 연로하여 병이 깊으니 곁을 떠나지 않고 부지하여 드리고 몸소 대소변을 받아냈음은 물론 쇠병에는 백약이 무효하여 음식을 삼키는 것은 오직 사람의 젖뿐이라, 공의 나이도 이미 늙었으되 향리를 오가며 젖을 구걸하니 그 효성에 감복하여 유부(乳婦)들이 자기 아이의 젖을 줄이고 호응하여 10여년을 연명하였다.

 

공의 나이 70세가 넘어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집례와 거상을 모상과 같이 하였고 국상에는 반드시 소복 소찬을 친구 부음에는 소찬을 하였다. 항상 효경(孝經)과 논어(論語)를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평생에 남의 시비장단을 말하지 않았다.

 

정조 신해(1791)년 4월에 졸하니 수가 90세라. 도유들이 공의 효행을 조정에 추천함에 임금의 은전으로 부역과 조세를 면제하고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벼슬을 내렸으며 더불어 부, 조까지 3세에 벼슬을 추증하니 광현이 지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