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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타 문화재 자료
(21) 김성일 형제 효열 정려비각(金成一 兄弟 孝烈 旌閭碑閣) |
위치 :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백동리 321번지
김성일(金成一) 1593(선조 26) ~ 1658(효종 9), 조선중기의 무신
김성일(金成一)의 자는 응건(應乾), 아버지는 우후(虞候) 준민(俊民)이며, 어머니는 하동정씨(河東鄭氏) 였는데 용이 하늘로 오르는 꿈을 꾸고 낳았 다하여 아명(兒名)은 현룡(見龍)이었다.
1636년(인조) 병자호란때 선전관이 되었으며, 이어서 무과에 급제하여 도총부경력(都摠府經歷), 영원군수(寧遠郡守), 곡산(谷山)과 철산(鐵山)의 군수 등을 거쳐 정유(丁酉)년(1657, 孝宗8년)에 삭주도호부사(朔州都護府使)가 되었다가 순직하였다.
뒷날 시 문정 우암 송시열공(諡文正尤庵宋時烈公)은「복수전기(復讎傳記)」를, 좌의정 소제 이이명공(左議政疎齊李頣命公)이 비문(碑文)을, 대제학 도암 이재공(大提學陶庵李縡公)이 비음기(碑陰記)를 지었으 며, 좌의정 국헌 이헌구공(左議政菊軒李憲球公)이 기발(記跋)을 찬술(撰述)하는 등 당대의 석학거작(碩學巨爵)들의 칭송과 증언들이 줄을 이었다. 조정에서 향백동(香栢洞)에 정려비각(旌閭碑閣)을 건립하였으 며, 증암사(甑岩祠)에 배향되었다. 공(公)의 효열 정려 기록은 우암 송시열선생에 의해 기록되고, 송자대전(宋子大全) 권 214에 소상하게 수록되었다. 나라에서 효열(孝烈) 정려비(旌閭碑)를 내렸으며, 후손들이 비 각 옆에 느티나무를 심어 공의 혼과 얼을 함께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