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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타 문화재 자료
(15) 충의각 (忠義閣) |
위치 : 전라남도 보성군 웅치면 오류촌
김혼(金混)은 조선조 선조 때의 인물로 광산김씨 29세손이다. 공의 종조부 김평석은 영광에서 장흥으로 입향한 상호군 김종혁의 장남 김완의 셋째아들로, 장흥에서 웅치로 피난한 입향조이다.
김평석은 조의제문으로 유명한 김종직의 학통을 이어받은 조선시대 5현의 한사람으로, 문묘에 배향된 성리학자 김굉필의 문인으로 조광조와 동문수학인이다. 조광조가 중종때 도덕적 이상 정치를 실현하려다 가 남곤, 심정, 홍경주등의 훈구파가 일으킨 기묘사화로 능주로 귀양왔다가 1519년에 사사되자 장흥에서 웅치로 화를 피하여 피신하였다.
김혼은 기골에 준수하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임란을 당하여 아버지 김안주에게 출사를 청하고 “나라 의 위급함을 구하라”는 아버지의 명을 받고 가산을 털어 병기와 병량을 구입하고 의병을 소집하여 삼도 임계영 진중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장수에 주둔한 최경회 진중으로 들어가 왜적과 전투에서 3번이나 큰 공을 세우고 최경회가 조정에 장계하여 계공랑직장을 제수받았다.
김혼은 승승장구하여 전진하던 중 경 남 초진의 주교전투에서 적에세 포위되어 7주야를 싸우다가 장렬이 순국하였다. 종노 철쇠가 공의 전사소 식을 알리니 아버지 말하길 “내 아이가 죽을 바를 얻어서 죽었는데 내 어찌 한이 있으리오” 하였다.
공의 부인 초계 변씨가 14세 된 아들을 데리고 전장에 달려가 시신을 찾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 아와 유품을 묻고 초혼장을 지낸 다음 목을 메 순종하였다.
공의 아들 김홍업은 중국 도련명의 뜻을 기려 촌전에 오류를 심고 조부모에게 효도와 후손의 양육에 힘 쓰니 훗날 세상 사람들이 이곳을 오류촌이라 부르고 공을 유촌선생님이라 하였다. 후손들이 마을어귀에 충의각을 세워『충, 효, 열』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