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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타 문화재 자료
(13) 사온직장공파 8문 유허비(司醞直長公派 八文 遺墟碑) |
위치 :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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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醞直長公(諱英)의 6世孫 8형제의 유허비다.
조선초기(1406~1469) 예조판서를 지낸 문경공(諱禮蒙:1406~1469)의 아들인 참판공(性源)의 아들 8 형제 중 말문(末文) 윤문(胤文) 철문(綴文) 말문(乃文) 등 4형제가 문과에 급제하여, 말문은 사간원 사간을 거쳐 나주목사 형조참의 우승지 좌승지 도승지가 되고 중종19년에는 제술(製述)에서 으뜸이 되어 별조궁(別造弓)1정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남해안에 침입한 왜구를 토평할 때 종사관이 되어 좋은 계책을 세워 승 전하고 돌아오자 황해도 관찰사를 배명 받았다. 나머지 7형제도 윤문(胤文)은 정랑에 철문(綴文)은 직제 학에 내문(乃文)은 부제학이요, 계문(季文)은 현감에 중문(仲文)은 사지에 숙문(叔文)은 봉사에 백문(伯文)은 참봉으로 8형제가 모두가 관직에 나아가니 세상에서는 이들 팔형제를 팔문집 이라 부르며 부러워했다.
당시 조선왕조실록(중종14년 : 1519년 8월23일)을 보면 전라도 관찰사 김안국이 임금에게 장계하기를 “담양부에 사는 사노 박유엄이 그의 아들 박근에게 말하기를 ‘처주 김말문이 조상을 담양 동면 명당자리에 장사지내고 4형제가 급제하였으니 장차 임금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 하였고 그 이웃사람 보린과도 그런 말을 하였다는데, 말이 패란(곧 반역을 뜻함)과 관계되어 놓아두기 어렵기에 감히 위에 계 문하오며,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가두었습니다.”라고 하는 관찰사의 장계를 보아도 당시의 8문집은 선망의 대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