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링크
본문
9) 호당(湖堂) |
연번 |
세(世) |
휘자(諱字) |
관(官) |
시대(時代) |
아호(雅號) |
1 |
24世 |
구(絿) |
부제학(副提學) 증이조판서 (贈吏曹判書) |
중종(中宗) |
자암(自庵) |
2 |
24世 |
질충(質忠) |
호조정랑지제교 (戶曹正郞知製敎) |
선조(宣祖) |
남봉(南峯) |
3 |
26世 |
계휘(繼輝) |
대사성(大司成) |
선조(宣祖) |
황강(黃岡) |
편집자 주
① 호당(湖堂) : 호당(湖堂)이란 독서당(讀書堂)의 별칭으로서 세종(世宗)때 젊고 유능한 문신(文臣)을 뽑아 이들에게 은가(恩暇)를 주어 독서(讀書=공부)에 전념하게 한데서 비롯된 제도인데, 이를 [사가독서(賜暇讀書)]라고 하여 문신(文臣)의 명예로 여겼으며 출세 길도 빨랐다.
② 통훈 이하의 문신으로서 문학이 특이한 자는 대제학으로 하여금 초계하여 호당에서 독서하게 한다 ; 通訓以下文臣文學特異者 令大提學抄啓 賜暇湖堂讀書 (속대전 예전 장권)
③ 1426년(세종 8)에 집현전 대제학 변계량(卞季良)이 세종의 명을 받아 재주와 덕행이 뛰어난 문신을 선정하여 장의사(藏義寺)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게 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세조 때 일시 폐지되었다가 1491년(성종 22)에 상설기구로‘ 남호(南湖) 독서당’이라는 현호(懸號)를 달고 복구되었다. 1517년(중종 12)에는 지금의 서울 성동구 옥수동(玉水洞) 한강 연안의 두모포(豆毛浦)에 독서당을 신축하고‘ 동호(東湖)독서당’이라 하였다. 이때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 소실될 때까지 학문연구와 도서관의 기능을 담당하였는데, 정조 때 규장각이 설치됨에 따라 완전히 소멸되었다. (출처 독서당[讀書堂] 네이버백과사전)
④ 문정공파보(문민공), 문숙공파보(시중공)에는「호, 기, 우서, 구, 질충, 개, 계휘」7명이며, 광산김씨사에는「구, 질충, 계휘」3명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