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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원·사배향(院·祠配享) |
연번 |
원·사 (院·祠) |
배향위(配享位) |
1 |
연산 돈암서원(連山 遯巖書院-) |
장생(長生), 집(集) |
2 |
안성 도기서원(安城 道基書院) |
장생(長生) |
3 |
공주 충현서원(公州 忠賢書院) |
장생(長生) |
4 |
연기 봉암서원(燕岐 鳳巖書院) |
장생(長生) |
5 |
광주 월봉서원(光州 月峯書院) |
장생(長生), 집(集) |
6 |
논산 죽림서원(論山 竹林書院) |
장생(長生) |
7 |
익산 화산서원(益山 華山書院) |
장생(長生) |
8 |
봉산 문정서원(鳳山 文井書院) |
장생(長生), 집(集) |
9 |
청송 병암서원(靑松 屛巖書院) |
장생(長生) |
10 |
파주 자운서원(坡州 紫雲書院) |
장생(長生) |
11 |
회덕 숭현서원(懷德 崇賢書院) |
장생(長生) |
12 |
해주 소현서원(海州 紹賢書院) |
장생(長生) |
13 |
부여 부산서원(扶餘 浮山書院) |
집(集) |
14 |
나주 월정서원(羅州 月井書院) |
계휘(繼輝) |
15 |
임피 봉암서원(臨陂 鳳巖書院) |
집(集), 구(絿) |
16 |
논산 충곡서원(論山 忠谷書院) |
정망(廷望), 익겸(益兼), 만중(萬重), 자빈(自殯) |
17 |
거제 반곡서원(巨濟 盤谷書院) |
진규(鎭圭) |
18 |
은진 효암서원(恩津 孝巖書院) |
성휘(成輝), 필태(必泰) |
19 |
논산 휴정서원(論山 休亭書院) |
공휘(公輝), 호(灝), 정망(廷望), 상연(尙埏), 진일(鎭一), 우택(禹澤) |
20 |
전주 인봉서원(全州 麟峯書院) |
동준(東準) |
21 |
장성 모암서원(長城 某巖書院) |
우급(友伋) |
22 |
예산 덕잠서원(禮山 德岑書院) |
구(絿) |
23 |
담양 구산서원(潭陽 龜山書院) |
언욱(彦勖) |
24 |
예안 향현사(禮安 鄕賢祠)) |
효로(孝盧) |
25 |
봉산 충렬사(鳳山 忠烈祠) |
만수(萬壽), 천수(千壽), 백수(百壽), 구수(九壽) 광협(光鋏) |
26 |
강화 충렬사(江華 忠烈祠) |
익겸(益兼), 득남(得男), 수남(秀南) |
27 |
선천 서포사(宣川 西浦祠) |
만중(萬重) |
28 |
광주 벽진서원(碧津書院) |
덕령(德齡), 덕보(德普), 덕홍(德弘) |
29 |
은진 금곡사(恩津 金谷祠) |
수남(秀南) |
30 |
옥천 표충사(沃川 表忠祠) |
집(集) |
31 |
고창 화동서원(高敞 華東書院) |
양감(良鑑), 인우(仁雨), 승길(承吉), 오행(五行) |
32 |
정읍 옥산서원(井邑 玉山書院) |
남식(南式), 이성(履成), 성은(性溵) |
33 |
안동 용계서원(安東 龍溪書院) |
용석(用石), 언기(彦璣) |
34 |
삼례 호산서원(參禮 湖山書院) |
동준(東準) |
35 |
고창 노산사(高敞 蘆山祠) |
연(璉), 석원(錫元), 기서(麒瑞), 경희(景憙) |
36 |
부여 청일서원(夫餘 淸逸書院) |
효종(孝宗) |
37 |
공주 숙모전(公州 肅慕殿) |
효종(孝宗) |
38 |
오산 창의사(鰲山 倡義祠) |
홍우(弘宇), 기수(麒壽), 광우(光宇), 덕우(德宇), 성진(聲振), 란(蘭), 언희(彦希) 정(珽), 언욱(彦勖), 부(溥), 세(世), 경남(景男), 명(冥) |
39 |
무안 모충사(務安 慕忠祠) |
약시(若時), 득남(得男) |
40 |
합천 화곡사(陜川 華谷祠) |
열(閱) |
41 |
무주 도산서원(茂朱 道山書院) |
여석(礪石) |
42 |
장성 경현사(長城 景賢祠) |
약시(若時), 승길(承吉), 오행(五行) |
43 |
진양 용강사(晋陽 龍岡祠) |
대민(大民) |
44 |
장흥 행강사(長興 杏岡祠) |
헌(憲), 유신(有信) |
45 |
담양 증암사(潭揚 甑巖祠) |
성일(成一) |
46 |
광주 충장사(光州 忠壯祠) |
덕령(德齡) |
47 |
강진 박산서원(博山 博山書院) |
순(淳) |
48 |
함흥 창의사(咸興 彰義祠) |
응복(應福) |
49 |
서산 송곡사(瑞山 松谷祠) |
위재(偉材) |
50 |
보성 용원사(龍院祠) |
연년(延年) |
51 |
안동 경현사(安東 景賢祠) |
부필(富弼), 부인(富仁), 해(垓) |
52 |
영광 무령서원(靈光 武靈書院) |
해(垓) |
53 |
완주 청하서원(完州 淸河書院) |
장생(長生) |
54 |
완주 호산서원(完州 湖山書院) |
동준(東準) |
편집자 주
ⓛ 서원(書院)은 조선 중기 이후 명현(名賢)을 제사하고 인재(人材)를 키우기 위해 세웠던 민간 사학 기관(民間私學機關)이다. 서원은 선현을 모시는 ‘사(祠)’와 제자를 교육하는 ‘재(齋)’에서 출발하며, 훗날 이들의 기능이 합쳐져 서원이 되었다. ‘사(祠)’의 경우, 신라시대 충청북도 진천에 김유신(金庾信)을 모신 사우가 세워졌고, 고려조에서도 국가와 역대 제왕에 공헌한 공신들을 공신당(功臣堂)에 배향하자 일반인들도 이를 모방하여 사우를 건립하고 선현을 봉사하였으며, 조선조에 와서는 한층 조직적으로 사묘(祠廟) 건립이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사묘제도는 조선 중엽의 서원 성립과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쳐 결국 서원의 성립은 사우의 발생에서 유래하였다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성리학적 정치철학에 충실한 사림(士林)들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 선조대에 이르면 서원은 본격적인 발전을 보게 된다. 서원은 지방 사림들의 자치적 활동을 보장하는 향촌기구의 기능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정착되어가는 성리학을 배울 수 있는 교육시설이기도 하였다.
서원은 제향하는 인물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되는데, 연고지를 따라서 건립하는 것이 보통이다. 연고지란 대체로 가향[본관·출생·내향(內鄕)·외향(外鄕)·처향(妻鄕)), 거주[우거(寓居)·복거(卜居))], 사거(死居, 묘소 포함), 유배(귀양)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서원은 후손·문인·향인들이 따로 따로 세우는 것이 아니고, 대개는 서로 힘을 합쳐 세우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건립된 서원은 제향인의 후손들이 동족의 결합과 유대를 도모하는 장소이며, 제향인으로 대표되는 당색의 근거지이고, 또한 지방 양반들의 향촌의 중심지가 되는 것이었다. 결국 서원의 발달은 전체적으로 양반들의 결속 및 기득권 유지와 관련이 있다.
또한 양민이 서원의 노비로 들어가 군역(軍役)을 기피하고, 유생(儒生)들도 학문 대신 붕당(朋黨)을 형성해 당쟁에 빠져 국가를 분열시키는 폐단을 가져왔다. 따라서 영조(英祖)․정조(正祖)․철종(哲宗)등은 서원 정비에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특권계급의 이해관계 때문에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 후 1864년(고종 1) 대원군이 섭정하면서 서원에 대한 일체의 특권을 없애고 서원의 설치를 엄금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비를 단행하여 사표(師表)가 될 만한 47개소의 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였다.
② 전국 54개 서원에서 103명의 조상들이 배향을 받고 있다. ③ 장성 경현사(長城 景賢祠)의 자진(子進), 극기(克己), 득종(得宗), 대민(大民) 담양 동산서원(潭陽 東山書院)의 천록(天錄), 필의(必宜) 안동 낙천사(安東 洛川祠:이후 경현사(景賢祠)로 변경)의 연(緣), 부의(富儀), 부신(富信), 부윤(富倫), 기(圻) 등 11분이 광산김씨역사관도록 등 기존 기록에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자료를 정리하면서 상기 11분의 전거(典據)를 확인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