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링크
본문
15) 왕비(王妃) |
연번 |
세(世) |
시대(時代) |
구분(區分) |
비고(備考) |
1 |
10世 |
고려(高麗) |
선평왕후(宣平王后) |
|
2 |
16世 |
원(元) |
태정황후(泰定皇后) 김달마실리 |
|
3 |
17世 |
북원(北元) |
소종황후(昭宗皇后) |
|
4 |
31世 |
조선(朝鮮) |
숙종원비(肅宗元妃) 인경왕후(仁敬王后) |
|
5 |
未詳 |
조선(朝鮮) |
정화당 김씨(貞和堂 金氏) |
|
|
36世 |
조선(朝鮮) |
순화궁 경빈김씨(順和宮 慶嬪金氏) |
後宮 |
편집자 주
① 선평왕후(宣平王后, ?~1170)
고려 인종(仁宗)의 王妃로 父는 병부상서 김선(金璿/璇), 祖는 사정공(思靖公) 약온(若溫), 曾祖는 문안공(文安公) 양감(良鑑)이다. 1127년(仁宗5) 2월 仁宗妃가 되었다. 의종(毅宗)이 즉위하여 왕태비 연수궁주(王太妃延壽宮主)라 하였다.
사정공 김약온은 1059년생이며, 사정공의 아들 병부상서 김선은 1084년경 생이고 선평왕후는 1109년경 생으로 1127년 2월에 인종비가 되었으며 선평왕후의 남동생 尙書김이영(金貽永)은 1113년 경생으로 1132년에 문과급제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卷88 后妃傳1 仁宗宣平王后/ 高麗史卷97 / 金昌鉉敎授著<高麗11世紀의 政治와 仁州李氏> 鄭沆墓誌銘/ 東文選.
② 태정황후(泰定皇后)
김달마실리(金達麻實利)는 충숙공 심의 둘째딸로 태어나 1313년(원 인종2년)에 아버지 심이 원나라 황제에게 노여움을 사 임조부에 부처되니 오라버니되시는 석견과 함께 구명에 나서 아버지를 구하였으며 1320년 정월에 인종이 죽고 3월에 태자가 즉위하니 즉 英宗이요 1323년 8월에 영종이 시해 당하여 9월에 晉王也孫鐵木兒를 옹립하니 이 사람이 즉 泰定帝(眞宗)이다.
김달마실리는 태정황후이다. 태정제가 1328년 7월에 졸하니 태자인 천순제가 즉위하였다.
충숙공 따님인 金達麻實利이름과 원나라에서 좌승상에 오른 金完者帖木兒(元之帖木兒라고도 함)의 몽골식 이름에 대하여 부연 설명하면 당시에 몽골에 살던 고려인들은 몽골식 이름을 갖었던 것이니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아버지의 몽골 이름은 吾魯思不花였는데 이성계의 조선개국으로 인하여 뒤에 환조(桓祖)라고 묘호가 붙여졌으며 할아버지의 몽골 이름은 學顔帖木兒였는데 뒤에 도조(度祖)라는 묘호가 붙여졌고 從祖의 몽골 이름은 塔思不花이었다.
※ 참고문헌: 元史, 高麗史, 高麗史節要, 金深墓誌銘, 朝鮮王朝實錄 / 全州李氏文獻集"偉蹟史" (璿系衍慶編)
③ 소종황후(昭宗皇后)
문숙공(휘 周鼎)의 次子인 시중공(휘 流)의 次子, 판도판서공(휘 允藏)의 따님이다.
원 소종(昭宗, 1338년~1378년)은 북원의 제2대 황제이며 원나라로는 12대 황제, 몽골 제국의 대칸으로는 17대 대칸이다. 이름은 아유르시리다르이다. 원 혜종의 장남이며 어머니는 고려 출신 기황후이다. 그 역시 고려 출신 여성 권씨(權氏)와 김씨(金氏)를 맞이하여 황후로 삼았다. 다른 묘호는 철종(哲宗)이고, 시호는 무승화효황제(武承和孝皇帝)이다.
<高麗史 권38 세가 공민왕 2년 8월 정사(1353년 8월 23일 음력) ○ 丁巳 太子·平章還, 王餞于郊. 太子約娶金允臧女, 以其女歸>
④ 인경황후(仁敬王后,1661년(현종 2)~1680년(숙종 6))
조선조 제19대 숙종(1661~1720)은 1674년 8월에 즉위하여 1720년 6월에 세상을 뜨기까지 재위기간 45년 10개월로장수집권 하였던 임금이다. 부인이 6명으로 왕비가 인경왕후, 인현왕후, 인원왕후 셋이며 후궁이 희빈장씨와 숙빈최씨, 명빈박씨이다. 왕비 셋 모두 소생이 없음으로 희빈장씨의 소생 경종이 20대 왕위에 오른다. 숙종의 제일왕비 인경왕후는 김장생의 4세손인 광성부원군 문충공 김만기의 딸로 10세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의동 별궁에 입궁하고 11세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14세에 중전이 되었다. 숙종과 동갑으로 인후온화하고 마음씨 착한 절세의 미인이었으나 불행하게도 왕자를 생산하지 못하고 딸만 둘을 낳았으나 딸 둘 모두가 일찍 죽고 자신도 꽃다운 나이 20세에 천연두로 발병 8일만에 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경덕궁 영소전에 위패가 모셔 있고 능은 익능으로 경기도 고양시에 있다.
⑤ 순화궁 경빈김씨(順和宮 慶嬪金氏)
경빈김씨는 순조32년(1832-1907) 광산김씨 김재청의 따님으로 한사루동 사제의 유연당에서 탄생 하였다. 1847년 헌종 13년 순원왕후가 헌종이 나이가 많은데도 후사가 없자 정식으로 간택하여 들인 후궁으로 이해 음력 10월20일 경빈으로 책봉되고 궁호를 순화라 하였다. 헌종은 경빈을 위해 창덕궁내에 낙선재를 지어 자신과 경빈의 사랑채로 사용했으며 창덕궁내에 석복헌을 지어 경빈의 처소로 쓰게 하였다.
1849년 헌종이 승하함에 따라 순원왕후 신정왕후를 정성을 다하여 받들었으며 효정왕후에게 예를 다하면서 검소하게 생활 하였다.
1907년 광무11년 향년76세를 일기로 별세하자 고종은 깊이 애도하고 조문을 직접 지어 내렸다. 이해 양주 휘경원 천봉국내 서록 손좌에 예장 하였다. 현재 묘소는 서삼릉 내 귀인 묘역에 있다.
⑥ 정화당 김씨(貞和堂 金氏)
정화당 김씨(貞和堂 金氏)는 조선 고종의 황후로 간택되었던 인물이다. 본관은 광산이다. 명성황후의 사망 후 새 황후로 간택되었으나, 제대로 책봉도 받지 못한 채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강제 출궁 조치가 내려졌다. 이후 평생 수절을 지키면서 살다가 1917년 5월이 되어서야 겨우 입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궁궐 내 구석진 방에서만 지내야 했으며, 결국 고종이 사망하던 순간까지 내전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현재 그녀의 묘는 서삼릉 내 후궁묘에 있다.
알아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