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지기 평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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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취사당(聚斯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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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사당(聚斯堂)은 양육인재를 위한 강학의 도장이다. 그리고 광산김씨 종중의 종사를 논의하는 회합의 장소이다. 취사라 함은 모든 후손은 이리로 모이라는 뜻이다.

 

취사당은 전면 5칸 측면 2칸 전, 후퇴의 건물로 장대석 기단위에 다듬돌 초석이 놓이고 그 위에 원주를 세웠으며 이익공 형식의 겹처마 건물로써 지붕은 팔작지붕을하고 있는 유교 전통 서원 강당형식의 건물이다.

 

1849년 승지공 재경이 광주목사 재임시 4칸 사옥을 만들어 비각을 수호케  하였으나, 어느 때 훼철됐는지 알 수 없고 1885년 재경의 아들 윤현이 광주목사 재임시 종회소가 없음을 개탄하고 솔선 봉금을 희사하고, 호남제종의 협조를 얻어 당우 10칸, 고사 8칸, 문랑 5칸을 강사부지에 설립키로 하고 문헌공 영수가 취사당이라 명명하였다.

1888년(고종 25년) 5월에 상량문을 찬하고, 참판공 영목이 기하고, 판서공  수현이 발하고, 윤현공이 자서하였는데 윤현이 준공을 못하고 남원으로 전임함에 따라  장성군수 오현이 계승하고 유사 상수, 수익, 용현, 제응 등이 간역하였다.

 

1892년(고종 29년)에 준공하여 의성현령 윤현, 이조판서 수현, 선공감역 형수가 취사당 서를 쓰고 홍주목사 오현, 이조참판 영묵, 사헌부감찰 진현, 병마절도사 중현 외 상수, 기현, 용현이 취사당 기를 썼다. 이때부터 취사당 입규를 정하고 중삼중구일에 후손들이 모여서 숭조목족을 위한 종사회의를 시작하였다.

 

1948~1949년 평장동이 입산인들의 소굴이 되어 주민 소개와 함께 가옥 훼철 계획이었는데 광주 영중 용주의 주선으로 취사당이 온전하게 보존되었다.

 

1950년 입산인들이 취사당에 연료를 쌓고 불태우려 하던 중 평장동에 사는 기수가 생명을 불구하고 나무단에 뛰어들어 이곳에 불을 지르려면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설유하여 소각을 면하였다. 1984년 도유사 관순, 중수위원장 용순, 집행위원장 희수가 평장동 성역화 사업을 시행하면서 대우그룹 김우중의 헌성에 의하여 취사당을 옛모습 그대로 이축하여 지금의 수존재로 보존하고 현재의 취사당을 중건하였다.

 

-취사당-

문헌상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 평장동에서 광산김씨의 종사는 1600년대 말, 170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고, 취사당의 종무는 1892년 건물 준공과 동시에 취사당 입규를 정하고 1912년에 경유사, 향유사 제도를, 1935년에 취사당 입규를 고쳐 평장동 종약으로 변경하여 체계를 갖추어 오다가 1967년에 현대식 광산김씨 대종중 종규를 제정하고 1986년, 2001년, 2004년에 개정을 통하여 현행의 종규로 운영되고 있다.

 

중삼중구일 :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