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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시조공의 유허비와 비각(始祖公의 遺墟碑와 碑閣) |
유허비(遺墟碑) : 서기 1737년(영조 13년)에 사계 김장생의 현손 참찬공 퇴어자 김진상과 지추공 김진동, 봉사공 김복택, 현감공 김성택이 호남 제종과 입비를 추진하였다.
1739년 수비와 함께 비각을 준공하고 참찬관 퇴어자 김진상이 유허비 음기를 지었고 통덕랑 김회풍이 명을 지었다. 비각 안의 비는 2002년 1월 12일 전라남도 지정문화재 기념물 200호로 지정되었고, 유허지 7,145㎡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확정되었다.
평장동 유허비는 좌대와 비신,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다. 높이 249cm, 너비 75cm의 비 전면에는『신라왕자유허비』라 하였고 앞면 오른쪽에『유허비명』이란 제하의 119자의 내용이 쓰여 있으며 왼쪽에 비를 세우는 일에 참여한 4명의 이름과 관직, 이름 등 26자가 각인되어 있다. 뒷면에 김진상이 쓴 『유허비음기』라는 제목하에 180자의 내용과 23자의 세운시기와 글씨를 쓴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유허비각(遺墟碑閣) : 1739년 유허비와 동시에 건립하였다. 이 비각은 전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로 화려하고 우아한 이익공과 팔작지붕의 형식이고 부연을 단 겹처마로 구성되어있다. 고려 충열왕 때 황대전고공 김이가 쓴『광산현제영시서』와 조선 성종 2년인 1471년 김현뢰가 쓴 『평장동유허서』에도 이곳이 광산김씨의 세거지임을 적고 있다. 특히 김현뢰 유허서에는 평장동의 촌토척지도 모두 광산김씨의 세전지물이 아닌것이 없다 하였다.
유허비는 한국 씨족의 발생사를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사료이다. 특히 향토사의 입장에서 한 동네의 지명이 결정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전남지방 성ㆍ본관 발생에 대한 연구자료로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는데 중심역할을 중채가 하였고, 관련 자료 제공은 선술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