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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광산김씨 발상지 평장동의 연혁(光山金氏 發祥地 平章洞의 沿革) |
평장동은 신라 무주의 서일동이다 본래 백제무진주인데 신라가 병합하여 도독을 두었고,757년 (경덕왕 16년)에 무주로 다시 부르게 되었다.
892년. (진성왕 6년)에 견훤이 襲御 (습어)하여 후백제라 칭하고 도읍을 전주로 옮기니, 궁예가 고려 태조 왕건을 정기태감을 삼아 수군을 거느려 공략하고 주계를 정하였는데 성주 지훤이 굳게 지켜 불항 하였다. 936년 (태조19년)에 이르러 견훤의 아들 신검을 토벌하여 후백제를 멸망시켰다. 그후 940년 (고려태조 23년)에 광주로 고쳤다.
996년(성종15년)에 주를 낮추어 자사를 두었고 뒤에 다시 낮추어 해양현 으로 주계를 삼았으며, 고려 고종 46년에 공신 김인준의 외향으로 지익주사 로 승격하고 광주 목으로 하였다.
원종 초에 무진주로 승격 하였다가 다시 낮추어 광산현을 삼고 충선왕 2년에 다시 낮추어 화평부라 했고, 공민왕 11년에 다시 무진부로 바뀌었는데 고려 혜종의 휘를 피하여 무(武)자를 무(茂)자로 고쳤으며, 공민왕 22년에 다시 광주라 하여 목사를 두었다. 조선조에서도 그대로 부르다가 조선 세종12년에 다시 무진군으로 낮추었다.현으로 낮추었다가, 인조 12년에 주로 다시 하였다.
숙종 27년에 현으로 문종 원년에 다시 광주목으로 복구했고, 성종 20년에 광산현으로 낮추었다가, 연산 7년에 다시 광주라 하여 목사를 두었으며, 인조 2년에 광산낮추었다가 숙종 33년에 다시 광주로 복구되었다.
조선 1895년(고종 32) 전국을 23부로 나눌 때 나주부 관할의 광주군이 되었으며 1935년 광주가 부로 승격됨에 따라 광산군이 되었다가 1910년 경술년 왜정때 현재의 담양군으로 편입되었다.
이 곳 지명의 시원은 본래 백제 무진주에 소속된 마을이었고, 통일 신라때는 무주 서일동으로 불리워 오다가 지금으로부터 약1200년 전 신라 말에 광산김씨가 이곳에 살면서 고려 초기에 평장사가 많이 나와 평장동으로 불리게 되었고, 1910년 경술 국치 후 왜정때 화아로 동명이 바뀌었으나 광산김씨들의 동명 복원운동에 의하여 1924년 평장동으로 환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