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계 연구보고서

본문

6. 연구위원회 회의록(제1차)

back.gif

 

日    時 : 2000年 1月 22日(土) 13:00~

場    所 : 光山金氏 大宗會 會議室

參席人員 : 委員長外 37名(참석자명단 별첨)

 

  회 의 개 요

 

▣ 魯洙 대종회 수석부회장:

일기도 불순하고 공사가 다망하실텐데 이렇게 많이 참석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전 과학기술처 장관인 始中일가를 소개한 후 선사 연구자료를 제공한 昌炫 대종중 고문과 斗漢 대종회 부회장, 哲泳 대종회 이사를 소개하다.

 

이어 유관 논문 입수경위 등을 설명하고 각 시,도 종친회 회장 모임(98.3.9회장단회의)에서도 내용설명과 결의가 있었고 ‘98년도 보령에서 보학강좌때도 거론이 있었으며 ’99. 8. 30일의 대종회 이사회의서 魯洙 제1수석 부회장에게 연구책임자로 위임되었음을 설명하다.

 

이수건, 허흥식, 김광철 교수 등의 논문에서 3世 佶(또는 吉)이하 8世 義元까지의 우리의 선조님들이 光陽金氏로 표현되었고 ‘97년도 말에는 광양 김씨 족보가 나왔는데 거기에는 佶이하 8世 義元까지의 우리선조를 자기들의 조상으로 등제하였고 족보 첫머리에는 서울대학교 사학과 崔承熙 교수의 고문서 해설서를 첨부까지 하여 우리 선조님들과 문중을 욕보이고 있으나 대종회 수뇌부 일부에서는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99. 9월 광산뉴스사에서 방담이 있을 때 始祖公 神位문제와 광주 설단 등의 문제 논의가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설단 문제 등이 급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있었음도 전하다.

연구하려면 조직과 예산이 필요한데 1999년 예산으로 500만원이 소요된다.는 등 자세한 설명을 하다.

 

祐鉉 대종회 고문

1985년도 전남 대수씨로부터 대종회에 연락하기를 전북대학교 宋俊浩 교수가 연락하기를 “광산김씨를 광양김씨로 논문을 쓰고 있으니 광산김씨는 열의를 가지라고 하였다.”라고 하여 故 永敦교수와 상의하여 반박논문의 필요성이 있다고 하였으나 광양김씨는 소수인데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 당시의 대세여서 유야무야 되었다.

이것은 光陽金氏와의 문제가 아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번에 연구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교수들로 하여금 논문을 발표하도록 하고 예산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니 예산문제에 적극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하다.

 

昌炫 대종중 고문   

1910년 발견된 誌石을 근거로 문제가 터진 것인데 光山金氏의 시련으로 본다.

李樹健교수 논문에 문제인 광양김씨 문제에 대해서는 각종 문헌을 발췌하여 자료를 교수들에게 제공 의뢰하여 반박 논문을 발표하자는데 동감합니다.

송모교수로부터 光陽金氏의 言及에 대한 내용을 입수한바 있는데 참고로 얘기한다면 李樹健교수가 光山金氏 先祖들을 光山金氏로 단정한 근거가 없는 추상적인 얘기이다.

光中, 大庸, 大鈞, 蔕가 光陽金氏라는 근거도 없고 묘지명에 ‘나주 광양현인야’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光陽金氏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다.

또한 位가 장자로 된 것은 박물관에 소장된 文肅公誌文에 의한 것으로 안다. 해양현인, 해양인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본다. 추상적이지만 1126년 이자겸의 난이 있었고 1170년 정중부 무신난에는 光中이 피화되어 가족들이 멸문을 당하다시피하여 해양으로 낙향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고 광양읍지 내용을 설명하고 참고로 하자고 하다.

그리고 지금의 세계는 장성보 족보를 만드는데서 바로 잡은 것으로 안다. 장성보의 시조공 역주를 연구해 주기 바란다고 하다.

 

永俊 대종회 종보편집위원   

宋俊浩교수를 만나 本貫(지방행정 구역 등을 정)과 籍貫(수령, 방백, 등의 부임 관계에 정)에 대한 설명을 하고 밀양박씨 족보를 예로 들어 설명, 고려사절요에 보면 914년 해양도에는 나주, 광주, 정주가 속해 있었다. 다음에 宋俊浩박사의 자료를 정리 복사하여 배부해 주겠다.

 

魯洙 대종회 수석부회장   

그러면 선사에 연구가 필요한지 여부를 우선 결정해 달라.

 

重洙 보학자

先系문제 있어서는 성천대부(昌火玄氏)께서 언급한바와 같으며 李樹健교수나 다른 논문에 대하여 시정을 요구하는 4가지 자료를 복사해 왔으니 나누어 드리겠다.

그들의 논문은 한마디로 몰지각한 논문이며 망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광산김씨 지도층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丁卯譜 가 1747년에 나왔고 대종회나 대종중이 발족한지 50년이 되는데 上系하나 정립하지 못했으니 이해가 안 간다. 앞으로 효과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참석자일동

魯洙수석부회장이 연구위원회 출범여부를 결론짓자고 하자, “연구위원회를 결성 출범하는 것으로 하자”며 일동은 박수로 찬성을 하고 명칭에 있어서는 善昱 교수의 제안대로 ‘광산김씨연구위원회’로 결정하다.

魯洙 수석부회장이 연구위원회 조직을 유인물의 ‘연구계획서(안)’을 참고하시기 바라고 연구계획 작성지침을 낭독, 설명하다. 그리고 일동, 이 안을 채택키로 하고 광산김씨사 연구위원장으로는 魯洙 대종회 수석부회장을, 부위원장에는 昌炫 대종중 고문과 容燮교수, 斗漢대종회 부회장을 만장일치로 선출하다.

 

尙植(鉉) 대종회 이사

이수건 한사람을 상대로 문중 전채가 대결하면 잘못하면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으니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다.

 

光秀(永)대종회 종무담당이사

선조관계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 하는 일부 독선적인 인사들 때문에 애로가 많은데 이렇게 훌륭하신 일가분들이 참여해 준 것에 감사하며 힘을 모아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하다.

 

魯洙 위원장   

연구계획서(안)의 연구방법과 연구조직에 대하여 더 설명을 가하고 연구수행진에 있어

① 족보상의 연구(광김, 터성)및 한문번역, 금석문 및 지리지상의 연구위원으로 忠浩, 容傑, 祐鉉, 仁씨등 4분으로 결정하고 ,

② 논문상의 연구위원은 위임해주면 선정하겠다고 하여 위임되었고

③ 연구 자료의 입수, 준비, 배포 및 연구위원, 정리위원으로는 壯潤, 容達, 濬씨등 3분으로 결정되었고 총무진에는 哲泳씨가 선정되고 이어서 연구예산에 대하여 설명하다.

 

永元 대종회 이사

연구비에 대해서는 연구하면서 그때그때 집행하면서 진행하여 주시고 너무 예산에 대해서 연연하지 말자고 하다.

 

祐鉉 대종회 고문

연구비 예산에 대해서는 대종회에서 예산이 세워질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魯洙 위원장

인사 소개를 못했는데 지금부터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고 하여 각자 자기소개를 끝낸 다음 기타 토의 사항에서는 대종회와 대종중의 조직과 업무 등을 설명하고 금년이 대종회 창립 50주년이 되는 해라 설명하고 오랫동안 수고가 많았다고 폐회를 선언하다. 끝

확인 金  容  瑞 인

     金  永  元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