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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거문헌(典據文獻) |
왕자대(王子臺)를 찾아서
자료를 정리하면서 컴퓨터 미숙으로 주석 정리에 편집의 오류가 발생하였다. 좋은 글 보내주신 덕남 김인 선생님께 송구스럽다. 독자들이 이를 감안하여 필독을 바란다
[輿地圖書] (1760년경 편집) 光州牧 ‘古跡’ 조 |
1)王子臺 :「在州西四十五里 大江上 俗傳三國時王子留陣之所 尙有築城基池(址)」 |
왕자대는 ‘광주의 서쪽 45리 大江 위에 있다. 속설에 삼국 때 왕자가 유진하던 곳이라 전하며, 아직도 축성하였던 基址가 있다.’ <평장동·왕조대·견훤대·등도 기록되어있다.> |
왕자대 위치가 ‘龍山’또는 ‘伏岩’으로 추정됨 |
[輿地圖書] 光州牧 ‘山川’ 조 |
南平川 :「在州西四十五里 自和順綾州發源 歷南平 至王子臺下 與極樂合」 |
남평천은 ‘광주의 서쪽 45리에 있으며, 화순과 능주에서 발원하여 남평을지나 왕자대 밑에 이르러 극낙강과 合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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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硏經齋全集] 成海應 편술 卷之58,蘭室史料1, 羅麗遺民傳 |
新羅王子興光。知國將亡。遁于光州爲民。子孫因籍焉。仕麗朝。八世相傳爲平章事。洞號平章。 |
신라왕자 흥광이 나라가 장차 망할것을 아시고 광주로 피하여 백성이 되니 자손이 이로 인하여 관적을 삼았다. 고려조에 벼슬하여 8세를 상전하여 평장사가 되니 동호를 평장동이라 하였다. |
참고 수록 |
[硏經齋全集] 外集44卷 地理類 東水經 正祖·純祖 代에 成海應 편술 (1760~1839) |
沙湖江 : 「沙湖江源出潭陽之秋月山。…(中略)… 至府東。北折而西南流。爲竹綠川。又西南爲滄江。至昌平縣。爲㓒川爲碧津。由極樂之坪。爲極樂江。至王子臺。砥石江自東來會。由王子臺以上大川二。長城白岩山之黃龍川。長城蘆嶺之可川入㓒川。小川五。潭陽滅峙之薪川。玉果之大橋川入竹綠川。光州無等山之三支川入㓒川。無等山之巾川。長城三聖山之九登川入碧川。 砥石江源出綾州之呂岾。西北流爲車衣川。環綾州州治。西北流經南平縣。爲城灘砥江。西北至王子臺。入沙湖江。由王子臺以上大川二。光州無等山道川。入于綾州治前。南平德龍山之魚川。入于王子臺之下。 二江旣合。環羅州▣治。爲廣灘。折而西至鸕鷀巖。爲錦津爲滎江。西爲洄浦。至古幕院。爲沙湖津。西南爲曲江 梨山 夢灘 駐龍之浦。經奄山爲木浦。西入于海。木浦者高麗莊和后吳氏浣紗而五色雲所見處。至今有浣絲泉」 |
사호강은 담양의 추월산에서 발원하여 …(중략)… 담양부의 동쪽에 이르러 북쪽으로 꺾이어 서남으로 흘러 죽록천이되고, 또 서남으로 창강이 되며, 창평현에 이르러 칠천이 되고 벽진이 되며, 극락평에서 극락강이 되어 왕자대에 이르러 지석강이 동쪽으로부터 와서 만난다. 왕자대에서 상류쪽으로 大川이 둘이니, 장성 백암산의 황룡천과 장성 노령의 가천이 칠천으로 들어오며, 小川이 다섯이니 담양 멸치의 신천과 옥과의 대교천이 죽록천으로 들어오고, 광주 무등산의 삼지천이 칠천으로 들어오며, 무등산의 건천과 장성 삼성산의 구등천이 벽천으로 들어온다. 지석강은 능주의 여점에서 발원하여 서북으로 흘러 차의천이 되고, 능주 관아를 돌아 서북으로 흘러 남평현을 지나 성탄지강이 되고 서북쪽 왕자대에 이르러 사호강으로 들어온다. 왕자대에서 상류쪽으로 大川이 둘이니, 광주 무등산 도천이 능주 관아 앞으로 들어오고, 남평 덕룡산의 魚川이 왕자대의 밑으로 들어온다. 두 강(극락강과 ·지석강) 이 이미 합류하여 나주 관아를 돌아 광탄이 되고, 서쪽으로 꺾이어 노자암에 이르러 錦津이 되고 榮江이 되며 서쪽으로 洄浦가 된다. 고막원에 이르러 사호진이 되고, 서남으로 曲江 梨山 夢灘 駐龍浦가 되며 엄산을 지나 목포가 되어 서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목포는 고려 장화왕후 오씨가 빨래하다가 오색구름을 본 곳이니 지금은 ‘완사천’ 이 있다. |
‘龍山’또는 ‘伏岩’으로 추정됨
‘龍山’ ‘伏岩’또는 ‘月城’으로 추정 가능함 |
[大東地志] (1864년 완성) 광주 ‘山水’ 조 |
平章洞 :「西北三十里 神武王後孫居于此 世爲平章故名」 |
평장동은 ‘광주의 서북 30리에 있으며, 신무왕 후손이 이곳에 살았는데 代代로 평장사가 됨으로 인하여 얻은 이름이다.’ |
참고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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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祖臺 :「西三十里 高麗 太祖 留陣之所」 |
왕조대는 ‘광주의 서쪽 30리에 있으며, 고려태조가 陣 中에 머물던 곳이다.’ |
白馬山으로추정됨 |
[大東地志] (1864년 완성) 광주 ‘山水’ 조 |
王子臺 :「西南 四十五里 新羅王子留陣之所 有築城臺址 ○按 新羅神武王微時避禍 往依淸海鎭大使張保皐 與武州都督金陽 合謀起兵 誅亂反正 此卽 神武王留陣之處」 |
왕자대는 ‘광주의 서남 45리에 있으며, 신라왕자가 陣 中에 머물던 곳으로 城 臺를 쌓았던 터가 있다. ○살피건대, 신라의 신무왕이 微力한 때 화를 피하여 청해진대사 張保皐에게로 가서 依託하고 무주도독 金陽과 더불어 함께 기병을 모의하여 患亂을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니 여기가 곧 신무왕이 陣 中에 머물던 곳이다.’ |
위치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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漆川 : 西二十里 潭陽之滄江 至州境 西南流至極樂坪 黃龍川自北來會爲極樂江 卽沙湖江之源 |
칠천은 광주의 서쪽 20리에 있으며, 담양의 창강이 광주경계에 이르러 서남으로 흘러 극락평에 이르러 황룡천이 북쪽에서 래회하여 극락강이 되니 즉 사호강의 원류이다. |
참고 수록 |
[大東地志] 남평 ‘山水’ 조 |
砥石江 : 源出綾州之呂岾 西北流爲車衣川 環綾州治東北流 右過和順之道川 西流左過楮浦川 西北流至縣東7里 爲砥石江 至縣北3里爲城灘 西流至王子臺左過魚川 至羅州界爲榮山江上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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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강은 능주의 여점에서 발원하여 서북으로 흘러 차의천이 되고, 능주 관아를 돌아 동북으로 흘러 화순의 도천을 오른쪽으로 지나고 서쪽으로 흘러 왼쪽으로 저포천을 지나 서북쪽으로 흘러 남평현의 동쪽 7리에서 지석강이 되고, 남평현의 북쪽 3리에 이르러 성탄이 되어서 서쪽으로 흘러 왕자대에 이르러 왼쪽으로 어천을 지나 나주 경계에 이르러 영산강 상류가 된다. |
이때에 ‘月城’으로 比定된듯함 |
[大東地志] 나주 ‘山水’ 조 |
2)沙明江 : 南平之砥石江 光州之黃龍川 合于王子臺下 西流 至州東5里爲廣灘 折而西南流 至鸕鷀岩 爲錦江津爲榮山江爲南浦 西流 左過松只川爲回浦 至古幕院 右過鵲川 爲沙湖津 入務安界 |
사호강은 남평의 지석강과 광주의 황룡천이 왕자대 밑에서 합하여 서쪽으로 흘러, 나주의 동쪽 5리에 이르러 광탄이 되고, 꺾이어 서남쪽으로 흘러 노자암에 이르러 금강 나루가 되고, 영산강이 되며, 남포가 된다. 서쪽으로 흘러 송지천을 왼쪽으로 지나 회포가 되고, 고막원에 이르러 작천을 오른쪽으로 지나 사호진이 되어 무안 경계로 들어간다. |
‘龍山’또는 ‘伏岩’쪽으로 추정됨 |
[湖南邑誌] (1871년경 편찬) 광주 ‘古跡’ 조 |
王子臺 :「在 州西四十里 三國時 王子留陣之所 尙有 築城臺址」 |
왕자대는 ‘광주의 서쪽 40리에 있으며, 삼국 때 王子가 陣 中에 머물던 곳으로 아직도 城 臺를 쌓았던 터가 있다.’ <평장동·왕조대·견훤대·등도 기록되어있다.> |
위치미상 |
[湖南邑誌] 광주 ‘山川’ 조 |
南平川 :「在州西四十五里 自 和順綾州發源 歷於南平 至王子臺下 合極樂」 |
남평천은 ‘광주의 서쪽 45리에 있으며, 화순과 능주에서 발원하여 남평을지나 王子臺 밑에 이르러 극낙강과 合流한다.’ |
‘龍山’쪽으로 추정됨 |
[光州邑志] (1899년 편찬) |
王子臺 :「在 州西四十里 三 囗王 時 王子留陣之所 尙有築城 基趾」 |
왕자대는 ‘광주의 서쪽 40리에 있으며, 삼국 때 王子가 陣 中에 머물던 곳으로 아직도 城 臺를 쌓았던 터가 있다.’ <평장동·왕조대·견훤대·등도 기록되어있다.> |
위치미상 |
[增補文獻備考] (1908년간행) 輿地考 ‘山川’ 조 |
王子臺 :「在西四十五里 俗傳 三國時 王子留陣之所」 |
‘왕자대는 광주의 서쪽 45리에 있으며, 속설에 삼국 때 왕자가 陣 中에 머물던 곳이라 전한다’ <왕조대·견훤대 등은 기록되지 않음> |
위치미상 |
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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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 “輿地圖書” 와 “硏經齋全集”의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王子臺의 위치를 榮山江(極樂江 또는 漆川이라고도 함)과 南平川(砥石川)이 合流하는 지점의 위쪽 大江 上에 있음을 구체적으로 摘示하고 있다. 이로 보면 현 羅州 老安의 龍山(龍洞) 一帶로 추정되어 지는바, 大東輿地圖의 ‘王子臺’ 表示와는 차이가 있다.
2) ‘沙明江’은 ‘沙湖江’의 오기로 보임. 즉 大東地志에는 ‘沙明江’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大東輿地圖’ 및 ‘硏經齋全集’ 등에는 ‘沙湖江’으로 기록되어져 있다.